아픈 歷史를 딛고 未來를 열자
아픈 歷史를 딛고 未來를 열자
  •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 승인 2013.10.08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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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歷史를 딛고 未來를 열자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이는 「6 ‧ 25의 노래」 1절의 일부이다.

 

     6 ‧ 25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괴군(北傀軍)이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 걸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시작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 우리가 어찌 이 날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포성(砲聲)에 놀라 새벽 단잠에서 깨어난 시민들은 짐을 꾸리고, 피란길에 올라야만 했다. 피란길은 정처없이 그저 남으로, 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더러는 맨몸인 채로, 더러는 보리쌀 두어되를 등에 메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 길을 떠나야만 했다.

     이로부터 3년 1개월 2일간의 밀고 밀렸던 전쟁의 상흔(傷痕)을 어찌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군 사망 149,005명, 부상 717,083명, 실종 132,256명이었으며, 이 외에도 미군 사망 약 35,000명, 부상 약 100,000명이었다고 한다.

6 ‧ 25 전쟁으로 인한 인적 손실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이보다 더 큰 상처는 민족분단(民族分斷)의 고착화이다. 또, 전쟁이 할퀴고 간 한반도(韓半島)에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離散家族)의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靑瓦臺 武裝共匪 침투사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停戰協定)으로 한반도에 총소리는 멎었지만, 하루도 평화스러운 날이 없었다.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무장공비(武裝共匪) 청와대 침투사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제124군부대 특수요원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함으로써 우리 정부를 전복시키고, 한반도를 적화통일(赤化統一)할 목적으로 자행한 북한의 악랄한 소행이었다. 그 날 31명의 무장공비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하려했지만, 경찰의 검문검색에 걸려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은 이에 머물지 않았다. 1968년 11월 2일 울진 ‧ 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1983년 12월 3일 부산 다대포 잠수함침투사건,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사건, 1998년 6월 22일 동해안 잠수정침투사건, 1998년 6월 22일과 2002년 6월 29일의 북방한계선(NLL) 해상침투사건,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과 155마일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 불장난과도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핵’(核)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우리와 우리의 우방을 위협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북한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최근에는 지난 9월 25~30일로 예정되어 있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며, 대남(對南)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반인륜적, 반민족적 행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17位의 이름 새긴 追慕碑 세우다

 

     이러한 북한의 끝없는 무력공세를 떠올리면서 ‘아웅 산 폭탄테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수행원과 함께 버마(현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 산(Bogyoke Aung San)의 묘소를 참배하기로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우리 수행원 17명과 현지인 4명을 사망케 한 테러 사건이다.

     때는 1983년 10월 9일, 30년이 지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10시24분(현지 시각) 나팔소리와 함께 꽝하는 폭탄의 굉음소리가 진동했다. 그리고, 참배를 위해 묘소 앞에 도열해 있던 무고한 대한민국 관료와 기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서석준 경제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심상우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이기욱 재무부 차관, 강인희 농림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재관 공보비서관, 정태진 경호원, 한경희 경호원,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참으로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이제 이들 17위(位)의 장한 이름이 새겨진 ‘아웅 산 순국사절 추모비’가 건립된다고 하니, 그 날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듯 하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웅 산 순국사절 추모비 민관(民官)건립위원회(위원장 :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가 오는 12월 20일경 추모비 준공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한다.

     이 추모비는 진한 회색을 띤 ‘블랙 콘크리트’를 소재로 한 높이 1.5m, 두께 1m의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미얀마 정부가 제공한 아웅 산 국립묘지 내 260평방미터의 부지에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는 30년 전 폭탄테러가 있었던 곳에서 약 50m 거리라고 하니, 17명의 순국사절들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이 추모비가 파주(坡州) 임진각(臨津閣)의 위령탐(慰靈塔)과 함께 이들 17명의 순국사절의 고귀한 삶의 발자취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새겨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제 30년 전의 그 아픔을 털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 놓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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