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
능구렁이 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
  • 박광원 기자
  • 승인 2013.10.08 14:52
  • 호수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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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혼자이긴 지겨워!

 

기나긴 무더위가 어느덧 지나가고 유독 옆구리가 시린 가을이 찾아왔다. 변명할 필요 없이 아예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편집자 주>

 “어이, 학생!” 열람시간이 마감된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시계를 보니 시계바늘은 벌써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취업 준비에 한창인 나에게 학교 도서관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공간이다. 그러다보니 보통 12시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기가 일상다반사다. 취업 준비로 인해 끼니를 대충 때우기 일쑤고 타지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연락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사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 오늘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 청첩장이 날아왔지만 축의금으로 나갈 비용과 결혼식에 다녀오는 시간을 계산하니 나에게 손해였다. 그래서 고심 끝에 동창에게 ‘축하하고 결혼식에 못 갈 것 같다’는 문자를 보냈다.

 피로를 잠깐 풀기 위해 잠시 학교 카페에 들렀다. 유아기로 퇴행한 듯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연인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커피를 원샷했다. 잠깐 은행에 들러 통장잔고를 확인해보니 아르바이트 비가 들어와 있다. 공인시험 응시료와 식권비 등을 대충 계산해보니 통장잔고에 있는 잔액이 반 정도 남을 것 같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고민해도 타인과의 교류가 없는 나로서는 저축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을 때에는 후배들이 곧잘 나에게 밥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후배들의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이후부터는 후배들이 나에게 간단한 인사조차 하질 않는다. 그 덕에 앞으로 백년간은 잔병치레 없이 거뜬히 살 수 있을 정도로 욕을 먹었고 지갑도 나날이 두둑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남에게 의존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혼자서 공부하며 자립심을 키웠고 남들 다한다는 사교육과 용돈역시 대학생이 된 이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했던 00제약 합격발표 날이다. 오후 6시가 되고 핸드폰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축하드립니다. 00제약에 지원하셨던 귀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메시지를 본 나는 너무 좋아서 곧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부재중이라는 얘기만 들리고 연락이 되질 않는다. 부모님의 전화를 기다릴 수 없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음성만이 내 귀에 울릴 뿐이었다. 침대에 들어가 지금까지의 일들을 회상해본다. ‘난 지금까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 온 건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능력이 정말 축복이 맞나.

박광원 수습기자 tkqtkf1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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