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시인 크리스토퍼 메릴
■ 미국 시인 크리스토퍼 메릴
  • 김윤숙 기자
  • 승인 2013.10.08 16:20
  • 호수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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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사물을 오래도록 관찰해야 한편의 시가 됩니다”

 

"세상을
이야기하는 시
더욱 소통해 나가길"


 지난 1일 우리 대학과 수원시가 주관한 세계작가페스티벌이 막을 열었다. 이번 세계작가페스티벌에는 2010년과 마찬가지로 각국에서 저명한 작가들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로 우리나라를 찾은 크리스토퍼 메릴을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깊어 황지우 시선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나희덕 시선집 『계단과 음계』, 한국 시인선인 『비로 인해: 한국의 선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우리 대학 치과병원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적의 꿈은 무엇이었나.
 10대 때 꿈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축구선수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축구선수, 코치로까지 활동했는데 오랫동안 축구로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대학에 들어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축구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한국 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했다. 번역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김원중 시인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다. 그가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 소개해 줬다. 시들이 너무 좋아 김원중 시인이 번역한 것을 좀 더 매끄럽게 번역해 미국 시인들과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한국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번역에 참여한 황지우, 나희덕 시인뿐 아니라 문태준, 정호승 시인의 작품도 봤다.(정확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작품들마다 각각 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꼽기가 어렵다. 

▲오늘(2일)부터 금요일까지 시 낭송회가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시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첫 번째는 「축구공 묘기를 부리는 소년」이다. 전세계적으로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웃음) 그리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재밌는 시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는 그리스 시인이 쓴 「왜냐면」이라는 시인데, 다른 문화권과의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한 시를 읽고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바람에 골랐다. 마지막은「정치학」인데 정치는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

▲한국에선 시를 학술적으로 접하고 감성적으로 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선 시에 대해 어떤 교육을 펼치고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시는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시를 즐기기 위해선 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미국에서는 시를 즐기기 위한 창의적인 활동이 많다. 시 낭송회도 자주 열리고 수업시간에 시를 많이 읽는다. 시를 읽고 분석하는 법도 배운다. 작가를 초대해서 시의 영감을 어디서 받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시를 지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신예작가나 작품을 소개해 달라.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국제창작프로그램에서 34개국의 34명의 신예작가를 소개했다. 모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흥미로운 글을 써냈다. 웹사이트에 소개해 놓았으니 들어가서 보길 바란다.

▲가벼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신의 내면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것이 시라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은 시는 없나. 
 있다.(웃음) 반은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반은 아니었다.

▲진지한 질문으로 돌아와서, 당신에게 시란 무엇인가.
 영국의 시인 W.H. 오든은 “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비슷하게 느낀다. 시를 통해 무언가를 일으킬 순 없지만 세상의 일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시인이 사는 시대를 시를 통해 증언하고 시인이 경험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들이 큰일은 해내거나 변화를 일으키기보다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의 지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창작의 고통은 출산의 고통에 견줄 만큼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자신만의 해소법이 있나.
 창작의 고통이 출산의 고통에 견줄 수 있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 아내가 두 딸을 낳았는데, 그건 창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웃음) 매일 글을 쓰는데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경우에는 기도를 하기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달리기나 산책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아니면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쉰 다음 다시 글을 쓰기도 한다.

▲시 이외에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냈다. 글을 쓸 때, 소재는 어디서 얻는가. 시를 쓸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글로 써낸다. 지금까지 축구, 그리스, 동양여행, 발칸 전쟁, 종교의 믿음에 대한 글을 썼다. 최근에 내가 쓴 글은 나무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오래도록 관찰해 글로 풀어낸다. 관찰해서 느낀 점을 글로 쓸 때,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관심을 갖도록 최대한 정확하고 명료하게 쓰려고 한다. 

▲나라 별로 시마다 특색이 있을 것이다. 한국 시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고 서양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의 시라기보다 동양(중국, 일본, 한국)의 시들은 이미지를 정확하게 묘사해 내는 특징이 있다. 이는 서양보다 100년은 앞섰기 때문에 따라잡기 힘들다. 그리고 적은 단어로 많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를 쓰기 위해선 한 가지 사물을 오랜 시간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자연의 사소한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 넓은 풍경 속에서 이를 찾아내는 것은 동서양이 갖는 공통점이라 생각된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가 ‘세계의 시인들, 시대의 전환을 꿈꾸다’이다. 앞으로 시가 어떤 발전이나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앞서 설명했지만, 시가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되고 여러 작가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서 소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전혀 모르겠다. 내가 10년 전에 이렇게 한국의 호수 옆에서 인터뷰하리라고 생각했겠나.(웃음) 마찬가지로 현재 내가 아이오와대학에서 국제창작프로그램의 수장을 맞고 있는데, 10년 전에는 전혀 예상도 못했다. 무얼 할지 나도 모르겠지만 살아있으면 좋겠다.(웃음)

김윤숙 기자 flyignabi@dankook.ac.kr
번역: 손지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생

▷▶크리스토퍼 메릴은?
피터 레이번 청년시인상을 안겨준『불조심』과 『빛나는 물』,『워크북』,『신열과 조수』까지 4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밖에도 논픽션 작품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으며 한국어로 번역된 책으로는 『숨은 신을 찾아서』가 있다. 현재 아이오와대학의 국제창작프로그램의 책임을 지고 있다. 국제 문학 전문가로 미국의 주요 방송에서 국제 문학에 관한 논평 및 자문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미 도서상의 심사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미국 문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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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yingnab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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