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법한⑯ 자취 절도
있을법한⑯ 자취 절도
  • 최형균
  • 승인 2013.10.17 19:09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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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은 학교의 기숙사나 학교 앞의 고시원과 같은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동생활을 하다보면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빨래, 음식 등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집에서 보내준 음식을 공동 냉장고에 보관한 경우, 누군가 음식에 손을 댄 흔적이 있으면 누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먹기도 찝찝하고 버리기도 찝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기숙사에 냉장고가 없어 집에서 음식을 넉넉히 보내주면 나누어 먹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누어 먹는 것이 미덕이지,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형법상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도죄가 성립한다. 뭐 그 정도를 가지고 야박하게 구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법이란 놈이 원래 야박하다. 수사기관이 기소를 할지 아니면 불기소처분을 할지는 모르지만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경우와 유사하지만 약간은 차이가 있는 사례가 세탁물과 관련이 있다. 세탁물의 경우는 건조하기 위하여 널어놓은 것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다른 사람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면서 가져갔다면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이 명백하다.
학생들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1시간 동안 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여 종종 자신의 방이나 다른 곳에 갔다가 마칠 시간이 되면 다시 나타나서 세탁물을 꺼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경우 세탁기 작동이 끝났는데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빨래를 꺼내놓고 다른 사람이 세탁물을 넣어 세탁기를 작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필자도 유학생 시설 기숙사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때 가끔은 있었던 일이다. 그럴 때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남이 자신의 세탁물에 손을 대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여학생의 경우 남이 자신의 세탁물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더욱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세탁물이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아주 불쾌하고 찝찝한 생각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의도적으로 가져갔다면 절도죄가 성립한다.
필자가 유학생 시절 누군가 필자의 세탁물을 꺼내 놓고 자신의 세탁물을 돌렸다. 그런데 필자의 세탁물을 꺼내면서 확인을 하지 못한 뒤의 학생이 필자의 세탁물을 넣은 채로 자신의 세탁물을 넣고 세탁기를 작동시켰다. 나중에 사과와 함께 돌려받기는 했지만 뭔가 찝찝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학생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동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런 일이 여학생과 남학생 사이에, 특히 속옷이 섞이는 일이 발생하면 더욱 찝찝할 것이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면 잘못해서 가져갔던 사람도 마찬가지로 찝찝하고 미안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만약 일부러(고의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모르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이라면 우리 학생들이 서로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으면 공동생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해프닝에 서로 불쾌하게 반응한다면 즐거운 공동생활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석배(법과대학) 교수
최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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