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자존감 도둑
백색볼펜: 자존감 도둑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10.30 22:27
  • 호수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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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강도는 그냥 잊어버리자

자존감 도둑


잔인한 강도는 그냥 잊어버리자

 

◇ “하하하, 예. 그런가 봅니다.”
가끔은 억지웃음으로 누군가를 상대하는 게 너무 힘들 때가 있다. 조목조목 옳은 소리로 단점을 지적해 대는 ‘누군가’를 ‘자존감 도둑’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존감 도둑들의 객관적인 시선은 잔인하다. 심지어 이 잔인한 강도에게는 반박조차 불가하다. 반박하면 소심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에 대한 인정도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남을 지적하면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잔인한 강도들이 주변에 한 명 쯤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자존감 도둑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다. 벌써 내일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일주일 가까이 되는 긴 연휴가 반가운 사람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의 뼈있는 대화가 벌써부터 부담스러운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추석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자존감 도둑들이 굳이 말해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 너 살쪘네?”, “취업은 언제 할 생각이니?” 분명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확인사살을 해주지 않아도 다이어트와 취업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알지만, 아는 만큼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기 힘들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툭툭 던지는 말에 현실은 갑작스레 내 눈앞에 놓이게 되고, 그 현실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 필자 역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자존감 도둑이 너무나 밉고 싫다. 팔랑이는 귀를 가진 나는 유독 도둑맞은 자존감을 회복하기가 어렵기에 더욱 그렇다. 회피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회피한다고 해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잠깐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이유 는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영화·드라마·웹툰에 나오는 인물 중에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많다. 대중문화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충분히 사실적이지만, 진짜 현실은 아니다. 그래서 작품 속에 몰입하면 그 객관적인 시선을 잊어버릴 수 있다. 몰입 이후에는 마음이 후련해지고 주관적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 물론 이건 필자의 방법이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방법들 중의 공통분모는 현실을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현실을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자존감이 부족할 때와 충만할 때는 큰 차이가 있다. 다른 분야로의 몰입을 통해 자신만의 주문을 걸자. 자존감 도둑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볼 뿐이다. 사실 필자 눈에 안 보이는 곳이 더 아름답고 빛난다. 현실을 책임질 필요는 있지만, 굳이 자신까지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기적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하다. <好>

이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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