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예술이라는 괴물
백색볼펜: 예술이라는 괴물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10.30 22:32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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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이성은 예술을 깨운다

예술이라는 괴물

잠자는 이성은 예술을 깨운다


◇이성은 편안한 일상을 위해 가장 중시되는 가치지만, 예술이라는 또 다른 바탕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스페인의 화가인 프란시스 고야는 당시 사회와 연관되는 여러 ‘괴물’을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인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에서 그는 이성을 찾을 수 없던 당시 사회의 양상을 비판하며, 그 사회 안에서 깨어난 괴물을 그려냈다. 그런데 고야가 만들어낸 다양한 괴물의 모습은 부정적인 당시 현실과는 달리 꽤나 생명력이 있고 조화롭기까지 하다. 다시 말해 예술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야의 괴물은 잠자는 이성, 즉 부정적인 현실로부터 태어났다. 그러나 이성에 반하는 괴물들은 고야의 예술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 한편, 괴물은 편안한 일상을 해치는 존재임과 동시에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을 뜻하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이성의 반대말이 감정이지만, 예술에서 이성의 반대는 상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는 ‘라퓨타’라는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하늘 위의 공간이지만, 미야자키는 오직 상상력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미야자키가 그려낸 그만의 괴물은 제목 그대로 ‘천공의 성 라퓨타’가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라퓨타는 이성을 잠재우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와 <금요일>에서는 신(神)과 절대자가 다양한 외관으로 등장한다. 청바지를 입은 동네 아저씨이기도, 눈이 열 개는 달린 도깨비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몇몇 회차에서 가장 이성적인 존재인 절대자(신)를 혐오스러운 괴물의 모습으로 표현하곤 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와 절대자와의 만남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이 모든 것은 상상에 의해 탄생된다. 고야의 그림과 미야자키의 영화, 그리고 이러한 웹툰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와 세계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예술이 갖는 의의도 이런 것 같다. 불가능한 만남을 주선하는 예술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작가들이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는 이성이 잠깐 쉬고 있는 시간에 깨어나 편안한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지금은 고야가 살던 때처럼 이성이 없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이기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끔씩 깨어나는 괴물은 편안한 일상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일 수 있다. 고야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려는 괴물을 그려냈다면, 오늘날의 작가들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괴물을 그려낸다. 예술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괴물은 이젠 그 자체로 ‘예술’이란 이름을 받으며 환영받고 있다.
<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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