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비속어
백색볼펜: 비속어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10.30 22:38
  • 호수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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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무너뜨리는 재밌는 오답

백색볼펜

 

비속어

기대를 무너뜨리는 재밌는 오답


◇내일로 다가온 한글날과 어울리지 않은 주제이지만, 가끔은 표준어가 비속어만의 매력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타인을 비하하기 위한 욕설이나 심하게 어긋난 맞춤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직까지도 어르신들에 의해 사용되는 정감 가는 여러 가지의 비속어의 경우에는, 표준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유의 느낌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다음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다뤄진 내용이기도 한데, 양상추에 과일드레싱이 뿌려진 건 누가 봐도 ‘샐러드’지만 각종 과일을 깍둑썰기해 마요네즈에 버무린 건 ‘사라다’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비슷하게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판매하는 슈가파우더 뿌려진 ‘도넛’과 구별되는, 시장에서 기름과 설탕을 잔뜩 묻힌 ‘도나스’가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일제의 잔여물이기도 한 단어들이지만, 표준어보다 정감 넘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어의 질을 결정하는 건 화자의 의도가 아닐까. 경우에 따라 청자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고 말하는 비속어는 표준어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다. 틀린 문법이지만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정서를 순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적 허용’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네 할머니의 “우리 똥강아지 주려고 도나스 사왔지”라는 말에서는 청자인 손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똥강아지나 도넛 등의 비속어를 정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비속어가 정답이 되진 않는다. 비속어는 재밌는 오답이다. 가끔 라디오에서 퀴즈 문제를 내곤 하는데, 재밌는 오답을 보내준 청취자에게 선물을 주는 경우가 있다. 넌센스 퀴즈나 1차원적 말개그 역시 재밌는 오답이다. 재밌는 오답 중에는 번뜩 떠오르는 것도 있겠지만, 대개 많은 생각을 통해 의도적으로 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말지만 자기 전에도 생각나는 개그를 짜기 위해 개그맨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관객의 웃음은 머릿속으로 예상하고 있던 패턴이 무너질 때 터지기 때문이다. 관객의 예측과 기대를 깨버리는 것이 말개그의 묘미다. 물론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돈이 수표이지, 어떻게 할머니가 될 수 있는가.
◇그래도 정답만 가득한 세상은 너무 빡빡할 것이다. ‘열라’, ‘짜장면’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재밌는 오답들이 표준어로 새롭게 지정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재밌는 오답을 또 다른 의미의 정답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게 정답이라면, 변화시키는 건 오답이라는 생각도 든다. 재밌는 오답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정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재밌는 오답을 생각해내면 된다. 융통성과 창의력이 미덕이 된 지금, 가끔은 정답보다 재밌는 오답을 위한 생각과 고민을 해보자. 우리 모두 “느낌 아니까~”
<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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