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니 6.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심마니 6.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송미라(연우심리상담센터) 소장
  • 승인 2013.11.05 12:40
  • 호수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을 진정 이해해주는 사람 있나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서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유정(이나영)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대신 고모인 모니카 수녀(윤여정)의 제안에 따라 한 달간 사형수를 만나 봉사 활동을 하기로 한다. 유정이 교도소에서 만나는 사형수 윤수(강동원)는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부유한 집안에 대학가요제를 통해 가수까지 했던 유정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집에서 마련해준 대학 강사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15살에 당한 강간 사건으로 더 자세히는 당시 엄마의 태도가 준 상처로 인해 더 이상 성장이 멈춰 지금도 15살이라고 우기는 인물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잃어온 것들만 켜켜이 쌓인 윤수는 어린 날 동생과 고아원을 뛰쳐나와 찾아간 어머니가 매정하게 닫아버린 그 날부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눈먼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결국은 사형수가 된, 현재 바라는 것이라곤  1분 1초가 고통스러운 삶을 빨리 끝내는 것뿐인 인물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빨리 죽기만을 바라며….

 그런 두 사람이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 소통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서로의 만남은 어색했고 마음의 벽도 높았지만 윤수가 죽인 파출부의 어머니가 윤수를 찾아와서 용서하고 싶다 말하고 그 할머니의 품 안에서 오열하는 윤수의 눈물을 통해 그들의 만남은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진짜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한다.

 만남이 거듭되면서 윤수와 유정은 교감과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15살에 사촌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삶이 멈춰버렸다는 유정의 고백을 들은 윤수의 진심어린 눈물은 유정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윤수의 불행했던 과거와 꼬여버린 운명을 들은 유정 역시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준다. 서로의 상처를 같이 나누고 어루만져주기 시작하면서 윤수와 유정은 미소와 눈물을 찾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며, 마음의 문을 열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단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윤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살고 싶은 절실함이 생겼고 유정 역시 15살에 멈춰버린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유정이 윤수가 살아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기적을 바라면서, 그녀에게 죽음보다 더 큰 희생인 어머니에 대한 용서를 신에게 보속으로 바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삶 자체가 행복한 시간의 연속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사랑이 해결책이 되어 준 것이다. 어쩌면 윤수의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 버려짐, 동생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이 아니라, 그것들을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고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봐주거나 들어주려 하지 않은 데 있었을 것이다. 유정 역시 15살에 당한 강간이 아니라 딸의 잘못으로 몰면서 입 다물기를 강요당한 것, 분노를 표출하면 안 된다는 그 억압이었을 것이다.

 윤수와 유정의 트라우마 대상은 공통적으로 어머니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어머니라는 존재로 인한 상처이기에 더욱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상처는 더욱 깊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서로를 변호해 줌으로써 서로의 존재감과 가치감을 소생시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어도 언제든지 내 편을 들어주고 내 아픔을 듣고 이해해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삶에 가장 큰 힘이며 희망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송미라(연우심리상담센터) 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