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두더지 증후군’
백색볼펜: ‘두더지 증후군’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11.12 18:54
  • 호수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인식을 마친 그대에게

백색볼펜

‘두더지 증후군’

성인식을 마친 그대에게

◇‘두더지 증후군’이 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은 감정, 그 감정대로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사전에 등재돼있지도, 검색해서 나오지도 않지만 이 단어가 게으름과는 조금 다른 저 상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두더지 증후군이 게으름과 다른 이유는 ‘어떤 큰 일을 마친 후 보상의 개념으로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이기 때문이다.  긴장 이후에는 누구나 이완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완의 일환으로 휴식을 찾곤 한다. 휴식을 위해서는 다른 여가활동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두더지 증후군 또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실 바쁜 학기 중에 두더지 증후군은 별로 반갑지 않다. 이 감정이 너무 자주 찾아오는데 반해, 그 상황은 아주 가끔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두더지 증후군이 반가운 때가 있었다. 매일같이 감정을 따라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재작년 수능, 정확히 말하자면 입시가 끝난 11월부터 우리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그 때는 스마트폰과 케이블 채널이라는 ‘신문물’을 처음으로 가까이 접했을 때라서 몸의 절반을 침대와 방바닥에 붙이고 살았던 것 같다. 사실 ‘두더지 증후군’이라는 단어도 당시 어머니가 내게 진단한 병명(?)에서 따온 말이다. 어머니는 그 시간에 운전면허라도 따지 그랬냐고 아직도 타박하지만, 어쨌든 당시 내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만큼은 굉장히 높았다.
◇이번 년도에도 수능이 있었다. 나는 수능이 일종의 성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전형과 전공, 직업과 직장 등 수능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직접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능은 큰 관문이다. 지난 목요일 수능이 끝나자마자 인터넷 기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오던 수험생들의 사진은 나까지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사스럽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능을 보고 온 동생을 꽉 안아줬다. 12년이 단 하루의 시험을 통해 결정된다는 건 생각해보면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에게 후련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보인 값진 눈물은 기대감과 벅참이었다면 좋겠다. 보상 개념의 두더지 증후군을 맘껏 즐기려면 ‘어떤 큰 일’을 해낸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에는 “어느 모로 보나 시간 낭비인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은 웃고 있군요.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휴식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더 많다. 긴장으로 큰 관문을 거친 수험생들에게 두더지 증후군을 선물하고 싶다. 맘껏 쉬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갖길 바란다. 그들 역시 내년 3월이면 고등학생보다 더 바쁜 대학생이 되겠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 하나 전해주겠다. 학기의 긴장이 풀리는 방학이면 두더지가 다시 찾아와주기도 한다. 
 <好>

이호연 기자
이호연 기자 다른기사 보기

 hostory3253@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