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
찰리는 앨런의 도움으로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가두어 두었던 슬픔을 친구와 나누기 시작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픈 기억에 직면한 찰리는 극도의 고통에 압도당하며 죽으려고 한다. 이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그는 또다시 이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사진을 보여주며 딸과 손녀를 잃은 슬픔을 같이 나누고자 매일같이 찾아왔던 장인, 장모를 향해 드디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진심을 얘기한다. “얘기하지 않고도 사진을 쳐다보지 않고도 전 항상 식구들을 보고 있어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들 얼굴 속에서도 식구들을 봐요. 장인 어른이 가지고 다니시는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구요. 자나 깨나 식구들이 눈에 밟혀요. 어디를 가든지요. 지나가는 세퍼드도 푸들로 보인다구요!”
남편의 외도 때문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도나는 재판에서의 찰리 모습을 보며 “난 왜 사람들은 저 사람이 상처받은 거라는 걸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심장이 뜯겨 나갈 만큼 아프다는 걸 왜 모를까요?”라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트라우마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동정을 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찰리의 바람처럼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부적응적 행동까지도 그대로 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모든 상황에서, 회피하려한다. “기억하는 게, 기억나는 게 싫어”라고 찰리가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도 찰리의 마음을 열게 만든 것은 친구의 사랑이었다. 감독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친구와 가족에 의해 그런 고통의 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이 영화는 그 누구하고도 대화하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가 만나 서로 알아가고, 그 가운데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친구 앨런은 찰리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길을 걷고, 함께 게임을 하고, 함께 맥주를 마셨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등을 보일 때 마음 한 자리를내어 주었다. 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와 상담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둬 주는 것, 그냥 기다려 주는 것, 그냥 하고 싶을 때 말 하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제발 묻지 말고, 치유하려고 하지 말고, 슬픔을 다 아는 듯 쳐다보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앨런 역시 아내와의 소통 없는 관계에 대해 깨닫게 된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어도 옆에서 그 입장이 되어 공감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진심어린 마음만으로도 해결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송미라(연우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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