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20. 밥의 공동체 <카모메 식당>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20. 밥의 공동체 <카모메 식당>
  • 김상천
  • 승인 2013.11.20 16:46
  • 호수 13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왜 혼자 밥 먹는 걸 두려워할까?

 

따뜻한 음식 생각이 자꾸 나는 걸 보니 겨울 맞네요. 겨울 음식은 재밌어서 좋아요. 찬바람 피해 들어간 천막 안의 짭쪼름한 오뎅국물이나 후후 불어먹는 뜨거운 야채호빵, 아니면 전기장판에 엎드려서 까먹는 시원하고 시큼한 귤 같은 것들요. 음식들의 소소한 재미마저 없으면 겨울의 추위는 혹독할 거예요.

음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 같이 먹을 때 훨씬 맛있죠. 혼자 밥 먹기는 때로 두렵기까지 한 일입니다. ‘집단’이라는 생존전략을 통해 태고부터 살아남아온 이 사회 속에서 혼자 먹는다는 것은 본능에 위배되는 행위일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근대화는 겨우 1분 전의 일이라고들 하잖아요. 1분 전까지 혼자 먹는 행위는 집단의 먹이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낙오된, 생존 가능성이 제일 낮은 자의 징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태연한 척 당당한 척 해봤자 어쩐지 불안하고 눈치 보인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 속의 혼자 밥 먹는 장면들은 그래서 그렇게 외롭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또 유지되는 일은 ‘같이 먹는다’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공동체는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눠먹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을 보고나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뜬금없이 문을 연 이 일본식당에 손님들은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불행을 과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먹밥을 만들어서 묵묵히 나눠먹습니다. 유쾌하게 계피롤을 구워서는 둘러앉아 커피랑 함께 먹기도 합니다. 별다른 말이 없이도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살아갈 힘을 되찾죠. 이 영화에서 같이 먹는 행위는 고통과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는 방법인 듯 보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 아닌가요? 매일 세 번 평생을 하루같이 해야 하는 일이 식사잖아요. 그러니 식사는 가장 보통의 일이어야 마땅한데 도무지 보통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평생을 매일 반복한다 해도, 어느 저녁 밥상에 앉았을 때 느닷없이 사무치는 밥 한 그릇의 애잔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끼니의 간곡함 앞에서 문득 쓸쓸해질 각오도 필요합니다. 식사는 또 화합이나 치유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소울푸드’라는 말처럼 사연 있는 한끼 식사 앞에서는 녹아내리듯 뭉클해지거나 정말로 와르르 무너져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되기도 하잖아요. 밥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눠먹는 기분 좋은 한끼 식사만큼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리 삶에 또 있을까 싶어지네요.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와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미도리씨, 만약에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뭘 하겠어요?”
“글쎄요… 제일 먼저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요.”
“그쵸? 저 역시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아주 좋은 재료를 사다가 많은 음식을 만들어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고 싶어요.”

저도 만약 내일 세상이 끝장난다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밖에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삶에서 벌어지는 대수롭지 않고 소소한 축제 같아요. 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리를 살게 하고 공동체를 회전시키는 동력이 아닐까 싶네요.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지만, 곧 각자의 길을 따라 흩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끼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입니다. 씁… 오늘은 제가 너무 느끼하네요. 저녁엔 매운탕!

영화 좋아하는 김상천

김상천
김상천 다른기사 보기

 nounsverbs@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