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인어공주의 투정
백색볼펜: 인어공주의 투정
  • 승인 2013.11.27 14:41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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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히 내려놓는 연습

백색볼펜

인어공주의 투정

느슨히 내려놓는 연습


◇처음 신문사에 들어왔던 수습기자 때는 능력 있는 선배들이 부러웠고, 정기자 때는 다른 특별한 활동 없이 수업만 듣는 학과 동기들이 부러웠고, 편집장인 지금은 그냥 후배 정기자들이 부럽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고 이기적이게도 매번 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부러워한 건 전부 나다. 이전의 나였고, 결국 내가 됐고, 곧 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수습기자 때로 돌아가긴 싫으니, 후회라기보다는 가벼운 투정을 부리고 있다는 게 더 맞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어공주 이야기가 있다. 바다 궁전의 막내 공주 에리얼은 육지 세상의 광경과 운명의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15번째 생일 날, 에리얼은 바다 위에서 멋진 왕자님을 만나고 조난당한 그를 구해준다. 바다로 돌아온 에리얼은 왕자를 다시 보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담보로 마녀에게서 두 다리를 얻는다.
그러나 왕자는 육지로 돌아온 에리얼을 알아보지 못하고, 에리얼은 결국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새드엔딩 동화다. 에리얼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왕자를 보면서, 바다 궁전에서 언니들과 함께 행복했던 자신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바다에선 육지를 꿈꿨으면서, 정작 육지에선 또 다른 슬픔에 가슴아파한다. 그렇다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테니, 인어공주의 감정 역시 투정이 맞다.
◇미래의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바라고, 그 바람이 이뤄진 결과가 생각만큼 매력적이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투정은 사실 동화 속 인어공주나 현실의 나를 비롯해 모든 이의 딜레마가 아닐까.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선 바람을 이루기 전에도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며 만족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람을 이뤘다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가 맡은 현실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기다림과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벌써 11월 말이다. 저번 주에는 첫눈이 내렸고, 이제 올해의 신문도 마무리됐다.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올해 내 주변에는 기분 좋은 일보다 안타까운 일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다시 1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 지면을 빌려 투정부리는 것이라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이러한 투정의 이유는 기다림과 책임감, 무엇보다 내려놓음을 잘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은 한 달과 다가올 2014년에는 맘 편히 부담감을 내려놓고, ‘또 다른 나’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나 그랬지만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것 같다. 옷깃은 꼭 붙잡고 부담감과 부러움은 느슨히 내려놓자. <好>

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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