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법한⑲. 경범죄 처벌법
있을법한⑲. 경범죄 처벌법
  • 최형균
  • 승인 2013.12.18 21:04
  • 호수 1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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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법한 ? 경범죄 처벌법 2013년 3월부터 새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5월에 거짓신고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는 재개정이 있었다). 이 ‘경범죄처벌법’은 법규정이 모호해 경찰의 자의적 적용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우려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경범죄처벌법’은 일본 경찰이 식민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1912년 도입했던 ‘경찰범처벌규칙’이 시초다. ‘경찰범처벌규칙’은 경찰이 국민의 삶에 일일이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미풍양속과 질서 확립이라는 명목 아래 경찰이 국민의 일상을 단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본이 세운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다.
유신독재 초기인 1973년 3월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옆머리는 귀의 윗부분을 조금이라도 덮어서는 안되고, 뒷머리는 옷깃 윗부분을 가리지 않는 단정한 형태이어야 하며, 무릎 위에서 17cm 이상 올라가면 단속대상이었다.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며 치마 길이를 재는 웃지 못 할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근거법이 바로 ‘경범죄처벌법’이다.
‘경범죄처벌법’은 사법기관의 관여 없이 경찰의 판단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하여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들까지 너무 많이 담겨있다. 예컨대 많이 알려진 ‘과다노출’이나 ‘고성방가’ 이외에도 ‘못된 장난’, ‘떠들썩하게’, ‘함부로’, ‘몹시 거칠게’, ‘지나치게’ 등은 판단이 애매한 규정들이다. 그리고 ‘지문날인’ 거부 등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아온 규정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이번 개정에서는 처벌수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28개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법에서 부과하는 범칙금은 형벌과 유사한 성격을 갖기 때문에 형벌과 마찬가지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야 한다. 근대 이후 확립된 이 원칙은 형벌규정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자의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서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범죄처벌법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규정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자의적인 해석은 억울하게 처벌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처벌되어야 할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경범죄처벌법’에 규정된 행위들은 본래 형법 등 다른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행위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범칙행위가 확대되어 경찰이 의도했거나 실수로 형사 처벌해야 할 행위를 범칙행위로 처리하여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8조 제3항에 따르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 법에 따른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동일한 행위를 이유로 다시 처벌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찰이 경범죄처벌법을 잘못 집행하여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 범칙금만 내고 면죄부를 얻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다. 예컨대 업무방해, 허위광고, 출판물 부당게재에 의한 공갈, 무단출입, 거짓정보 기입에 의한 문서위조, 마시는 물 사용방해, 흉기휴대(우범자) 등 다른 법에서 무거운 형벌로 다스리는 범죄에 대하여도 경찰이 범칙금부과를 하고 나면 다시 처벌할 수 없다.
경찰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현장에서 처분하고, 사법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일제와 독재의 잔재라고 비판받아온 ‘경범죄처벌법’을 강화하는 법정책이 시민들의 민주화의식에 합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학생들도 언제 문제가 될지 모르는 ‘경범죄처벌법’ 규정(http://www.law.go.kr)을 한번쯤은 읽어 보길 권한다.

이석배(법과대학) 교수
최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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