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界 하루 전까지 글 쓴 人文學者, 金烈圭
他界 하루 전까지 글 쓴 人文學者, 金烈圭
  •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 승인 2013.12.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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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界 하루 전까지 글 쓴 人文學者, 金烈圭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       한국학자 김열규는 타계 하루 전까지 글 썼다’ - 이 말은 작년 10월에 작고한 김열규(金烈圭) 교수의 유고(遺稿)를 정리해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어느 일간지의 제목이다.

‘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타계(他界)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한 달여 전의 일간신문을 찾아 다시 읽었다. “‘한국학 거장’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타계”라는 제목이 나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       81세! 너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여러 해 전에 어느 일간지에 게재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김 교수님처럼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날 키운 건 책 … 아직도 ‘허기’ 느껴”

 

‘       “날 키운 건 책 … 아직도 ‘허기’ 느껴” - 이 말은 그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했던 말 중의 하나이다.

‘       “책 읽기와 함께 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오랜 자국들이 새삼스럽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아 보인다. 이제 눈꽃이라도 필까?” 그는 일생 동안 ‘책벌레’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만 들면 어머니가 ‘밥 먹어라’라고 부르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때로는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다고 하니, 그의 독서벽이 참으로 대단했던가 보다.

‘       그는 “독서는 인간가치 살피는 일, 어려울수록 책 읽는 기쁨이 더 크다”고 했다. “배가 고프듯 머리가 고프면 책 ‧ 예술 ‧ 자연을 통해 채워야 한다”고 했던 그의 목소리가 그립니다.

 

‘       “이 보오, 기자 양반. 우리 세대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부터 6 ‧ 25, 4 ‧ 19까지 온갖 일을 겪었소. 더 숨가쁘게 살았어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단 말이오. 주 5일제만 봐도 그렇소. 우린 주말 이틀 노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바쁜 형편이 책 안 읽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독서는 자신의 인간가치를 살피는 일이라오. 배가 고프듯 ‘머리가 고파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지. 머리가 고픔은 책 ‧ 예술 ‧ 자연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소.”

‘       김 교수님의 이 말씀이 지금도 나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김 교수님에게 있어서 책은 생명 그 자체였다. 또, 정년 후 책과 더불어 노후를 즐긴 삶이 바로 그의 행복이었다.

‘       문득, 중국 송(宋) 나라의 정치인 왕안석(王安石 : 1021~1086)의 시(詩)가 떠오른다.

 

‘       “가난한 자 책으로 인하여 부유해지고

‘       부유한 자 책으로 인하여 귀해지고

 

‘       어리석은 자 책을 얻어 현명해지고

‘       현명한 자 책을 얻어 이로워지니

 

‘       책 읽어 영화 누리는 것 보았지

‘       책 읽어 실패하는 것 보지 못했네”

 

‘       그의 遺作 ‘아흔 즈음에’

 

‘       김열규 교수님은 국문학과 민속학을 통해 ‘한국학’(韓國學)이라는 지평(地坪)을 넓혀가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한국인의 신화』, 『한국인의 에로스』, 『한국의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한국인의 죽음과 삶』, 『자연에서 찾은 노년의 행복』 등이 그것이다. 그는 정년 후에도 『독서』, 『노년의 즐거움』 등을 펴냈다.

‘       그는 1992년 정년퇴임 후에도 잠시를 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유족(遺族)들에 의하면, “고인(故人)의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원고(原稿) 하나를 발견했는데, 마지막으로 저장된 것이 10월 21일 오후 5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고인이 혈액암(血液癌)으로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이라고 한다.

 

‘       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마지막 원고가 노년의 삶을 이야기한 『아흔 즈음에』라는 제호로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항암주사를 맞고 귀가해서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렸을 김 교수님을 생각하니, 스스로 머리가 숙여진다.

‘       『아흔 즈음에』가 출간되어 빨리 읽어보고 싶다. ‘생전의 김 교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 자 한 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책은 ‘나이 든다는 것’ ‘죽음을 생각하면서’ ‘글쓰기에 대하여’ ‘그리운 시절’ ‘함께 산다는 것’ ‘자연 품에서’로 목차가 설정돼 있다고 한다. 고인이 항암치료 중에 있으면서 쓰신 것으로 미루어보면, 이 한 권의 책에 그의 삶과 철학이 응집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나이 든다는 것’에는 아마도 그가 2009년에 펴낸 『노년의 즐거움』의 머리말에 담긴 “우리 인생의 황혼도 황홀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앞의 책 본문에서 「퇴직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라는 소제목을 설정하고, “그렇게 ‘나만의 나만을 위한 나의 일’이 마련되었다. 나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나의 주체성을 누리게 된 것을 크나큰 천행이요, 천운으로 여기고 있다. … 나만의 나만을 위한 나의 일! 이건 노년의 내가 비로소 향유하게 된 새 삶의 징표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정년퇴임 후 그 동안 못다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의 한 장면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자연 품에서’는 그가 1991년에 고향인 경남 고성(固城)으로 낙향하여 그 곳에서 농사도 짓고 손수 차를 끓여마시면서 즐겼던 전원생활(田園生活)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물하려는 것으로 믿어진다. 아마 ‘죽음을 생각하면서’에서는 삶과 죽음을 초탈한 그의 참모습이 담겨있으리라 생각된다. 항암치료 중에 있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독자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김 교수님! 부디 천상(天上)에서 영생(永生)을 누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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