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④ 시간을 멈추는 능력
능구렁이 ④ 시간을 멈추는 능력
  • 금지혜 기자
  • 승인 2013.12.27 15:44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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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아 멈추어라!

 난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목소리에 항상 맑은 정신으로 귀 기울이고 지각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내 머리맡에서 울리는 알람소리, 지금이다. 난 알람이 울리는 동시에 시간을 멈춘다. 그리고 마음껏 푹 잠을 잔다. 이렇게 나는 매일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한다. 수업시간이 다가오고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신다. “강태공~” “…” “구자철~” “…”. 출석부의 앞은 항상 이름순서가 빠른 아이들의 자리이다. 내 이름도 앞에 위치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원망한 적이 없다. 난 시간을 멈출 수 있으니까.
 난 이 능력을 결코 비윤리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험을 칠 때,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맛집 앞에서 기다릴 때, 텅텅 빈 지갑을 들고 있는 나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는 매장 안 물건들을 볼 때 등등…. 이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엄청난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순간의 쾌락보다 더 오래가기 때문에 하늘아래 부끄럽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시간을 멈출 수는 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 했던가, 왜 나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주시지는 않으셨을까. 집 앞, 엄마의 호통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시간이 필요해! 능력을 사용했다.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하나 둘 셋, 후 하’ 문이 열리고 귀 따가운 잔소리가 시작됐다.  “여자애가 시간이 몇 신데 지금 들어오는 거야!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E$%$ERF…” 하, 시간을 멈추어도 엄마의 잔소리는 멈출 수가 없다.
 불금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남자친구에게도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이다. 매주 금요일은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친구들과 간단히 술 한 잔 하고 조용히 집에 들어간다며 일찍 연락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여자의 촉은 무섭다고 했던가, 촉이 좋지 않다.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다른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멈추고 그가 있는 술집으로 갔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이성을 잃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의 옆에는 나보다 어린 상큼한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내 남자친구 놈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왼손에 있어야 할 우리의 커플링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우린 끝이다. 멈췄던 시간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전에 난 그에게 맥주 500cc를 부어버리고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가 든다. 이 세상에는 몰라서 더 좋은 것들이 많다.

금지혜 수습기자 jhkeum924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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