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터치 96. 김연아 선수와 ‘대한민국의 김연아’
대중문화터치 96. 김연아 선수와 ‘대한민국의 김연아’
  • 최형균
  • 승인 2014.03.11 18:51
  • 호수 1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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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체주의만 남은 올림픽

 LPG업체 ‘E1’이 제작한 김연아 선수 광고가 중단됐다. 지난 15일부터 전파를 탄 광고는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와 ‘너는 4분 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등의 문구를 내보내며 김연아와 태극기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려는 의도였다’는 E1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적 시각이 다분하다’와 ‘김연아는 엄연한 개인일 뿐’이라며 해당 광고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의 ‘반전체주의 시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발단은 피겨스케이팅 편파판정 논란에서 비롯됐다. 김연아 선수는 소치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74.92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지만 다음날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서 149.95점, 합계 219.11점을 받아 224.59점을 기록한 러시아 소트니코바 선수에 뒤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일부 내외신 언론들은 ‘소트니코바가 3연속 점프과정에서 착지 실수를 저지른 것에 비해 과도한 수행점수(GOE)를 얻었다’며 ‘김연아가 금메달을 뺏겼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누리꾼들 역시 이 같은 반응에 동조하며 ‘부정한 올림픽이었다’며 피겨스케이팅 재심청구를 위한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지난 2011년 안현수 선수의 귀화논란 당시 ‘러시아는 기회의 땅’, ‘역시 선진국이다’라는 칭송은 온데간데없이 ‘올림픽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니 후진국이 분명하다’는 표현과 금메달 당사자에 대해 ‘평생 거짓의 멍에를 뒤집어쓰며 후회를 할 것’이라는 저주의 어구마저 나돌고 있다.

 반면 김연아 선수는 “팬분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억울하네, 안타깝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며 “결과 나온 이후로 그 결과를 되새김질 해본 적이 없었다”라며 오히려 담담하게 판정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에 승복하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분노한 네티즌들에게 김연아 선수의 반응은 논외일 뿐이다. ‘김연아는 강대국 러시아의 횡포에 메달을 뺏긴 희생양’이라는 자기위안적 사고만을 되새기며 김연아라는 어린 새가 얻을 당연하고도 ‘예정된’ 금메달을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 주고 싶은 생각뿐이다.

 파벌주의로 피해를 입은 안현수 선수가 한때 조국이었던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준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할 때 일부 언론들은 ‘탈전체·국가주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 편파판정논란에 와서 김연아라는 개인의 입장은 없고 ‘김연아는 약소국인 대한민국을 대변한다’는 피해의식, 선수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시각이 판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파벌·인맥주의의 민낯을 낱낱이 밝힌 안현수에게 대중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탈국가주의 시각이 아닐 수 있다. 각종 부작용으로 성장이 가로막혔고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한국을 은연중에 비판하다 이를 폭로하고 국가발전의 기회를 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싫던 좋던 민중은 소속된 국가에 동화되며 그 자신이 국가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타 국가와의 경쟁 틀이 작용하는 올림픽에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 ‘국가간 화합을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은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김연아’만 남았다.

최형균 기자 capcomx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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