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그 후] 사회 각계로 옮겨간 “안녕들하십니까” 열풍
[대자보, 그 후] 사회 각계로 옮겨간 “안녕들하십니까” 열풍
  • 기획취재팀
  • 승인 2014.03.17 20:35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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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안녕들’에서 ‘사회 소수집단의 안녕들’로 변화 추세

 

 

 

 

 글 싣는 순서

 

-1부-

 

<연재 예고> 연재를 시작하며

① 대자보로 뭉친 안녕 못한 사람들, ‘안녕 네트워크’의 현주소 (3월 18일)

② 대자보 열풍의 본질 (3월 25일)

③ 대자보가 대한민국 ‘키보드워리어’ 들에게 미친 영향 (4월 1일)

④ 대자보 열풍이 만든 상품들, ‘안녕들하십니까 마케팅’ (4월 8일)

⑤ 대자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밖에서 본 시선 (4월 15일) 

이 기획은 청년 스타트업 슬로그업과 단대신문의 공동 취재로 이뤄집니다. 이념논리를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안녕들’ 열풍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5주간 매주 화요일 오전에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 주>


사회 각계로 옮겨간 “안녕들하십니까” 열풍
 
‘대학생의 안녕들’에서 ‘사회 소수집단의 안녕들’로 변화 추세
맹활약하던 전국 수십 개 대학 ‘안녕들’, 현재는 대부분 활동 난항
반면 사회 각계로 뻗어나간 ‘소수집단 안녕들’은 꾸준히 활발
 
 
 ■ 대자보 사라진 캠퍼스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의 중심에 섰던 대학들을 다시 가보니 이제 대학 내 대자보 열풍이 식었다는 사실이 여실했다. 11일 다시 찾은 동국대의 학내 게시판은 상업성 포스터만 가득했다. 철도민영화를 재치있게 비꼬며 화제를 모았던 “민영아, 어디서 잤어?” 대자보가 붙어있던 게시판도 비어있었다. 한 시간 넘게 캠퍼스 곳곳을 돌아봤지만 한 장의 대자보도 찾을 수 없었다. 수많은 대자보가 붙던 상록원 앞 게시판에서도, 성토대회가 열리던 이해랑 예술극장 앞에서도 대자보 열풍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 학생을 붙잡고 “혹시 대자보 못 봤냐”고 물었다. 멀티미디어공학과 원종윤(21)씨는 “캠퍼스 내 모든 게시판을 돌며 홍보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데 대자보는 한 장도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전에는 상록원을 중심으로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가 뒤덮였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도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곳 중 하나였던 ‘동국, 안녕들하십니까’는 최근엔 ‘안녕 연대’ 중앙 활동을 멈추고 교내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 반응이 식어감에 따라 초창기 20명에서 현재 8명으로 인원이 줄어드는 등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동국, 안녕들’을 운영하는 안드레(25)씨는 “연대에서 뚜렷한 계획과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해 학내로 활동범위를 좁히게 됐다”며 “비 규칙적으로 교내문제와 사회이슈에 관한 대자보를 게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홍보 포스터만 가득한 12일 숙명여대 명신관 앞 게시판(위). 더 이상 붙일 곳이 없어 바닥에까지 대자보를 붙이던 지난해 말 모습(아래)과 대조적이다.

12일 찾은 숙명여대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붙일 곳이 없어 바닥에까지 대자보를 붙이던 명신관 앞 게시판도 이제는 홍보 포스터만 가득했다. 열풍이 식은 건 이들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국 수십 개 대학에서 ‘안녕들’이 결성됐지만 현재는 대다수가 활동을 멈추거나 난항을 겪는 실정이다. ‘의혈, 안녕들(중앙대)’처럼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이제 많지 않다.
 
‘창원, 안녕들’의 윤태우(22·경남대)씨는 “요즘 ‘안녕들’은 침체된 상황이 맞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창원, 안녕들’은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이 멀어짐에 따라 한때 해소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게 침체되기도 했다. 최근 ‘창원 안녕들 2차 총회’를 열고 조직을 개편하는 등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다시 열기를 끌어올리는 상황이다.
 
12일 성균관대에서는 마침내 대자보를 찾을 수 있었다. 대학 측의 일방적인 대자보 게시판 철거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한 장이나마 예전 “안녕들하십니까” 성격의 대자보도 있었다. “다시 안녕을 묻는다”는 유학·동양학과 학생의 글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고 안녕을 묻고 싶다”는 내용이었지만 화답하는 글은 보이지 않았다.
 

 

▲ 대자보 게시판 철거에 항의하는 성균관대 학생들의 대자보.

 
성균관대는 최근 ‘미화 상의 이유’로 대자보 게시판을 철거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관련 기사를 취재한 성대신문 강지현(22)씨에 따르면 철거된 게시판에 붙어있던 대자보 상당수가 총학생회 선거에 대학이 부당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대자보가 달갑지 않던 몇몇 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은 최근 열풍이 수그러들자 그린캠퍼스 등의 명목으로 대자보를 철거하고 있다. 중앙대는 학내에 대자보 등을 붙이면 1회에 100만원을 지급토록 하는 이른바 ‘100만원짜리 대자보’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사회적 반발이 일자 75일 만에 취하했다. ‘의혈, 안녕들’은 이에 반발해 ‘의혈안녕기금’이라는 가상의 돈 4억원을 모아 대학에 ‘발전기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대자보 열풍이 태동한 고려대도 최근 분위기가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몇 장의 대자보가 붙어있긴 했지만 관심 갖거나 쳐다보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개강이던 3일 새로 붙은 ‘Ultimi Barbarorum!(극도의 야만)’ 대자보는 오른쪽 귀퉁이가 떨어지면서 글을 가리고 있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중앙광장, 학생회관 등에도 여러 장의 대자보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아닌 투쟁중인 학내 노동자들이 붙인 것이었다. 줄을 서 성황을 이루고 있는 동아리 박람회 행사와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교내에서 만나본 20여명의 학생들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거나 아쉬워하거나였다. 경영학과 이진영(22)씨는 “몇 달 전엔 기말시험에 주현우씨 대자보를 시민 정치참여의 관점에서 분석하라는 문제까지 나올 정도로 학내가 들썩였지만 이제는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학생들이 대자보 열풍이 식은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지나친 정치개입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역사교육과 서승권(22)씨처럼 “정치색을 빼고 나서 학생들 호응을 이끌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회학과 조예린(21)씨같이 “정치성향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열심히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이뤄지는 게 없으니 한계를 느낀 것 같다”는 의견도 상당수였다.
 

 


 
 ■ 사회 각계로 뻗어나간 ‘안녕들 네트워크’
 
대학 내 ‘안녕들’이 시들해지는 사이 ‘안녕들 네트워크’는 대학 담장을 넘어 사회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현재 청소년, 여성인권단체, 성소수자, 민변, 예술가 등의 사회 소수집단 ‘안녕들’이 결성돼있다. 이들은 ‘안녕 연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따로 또 같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인권단체 ‘댁의 김치는 안녕들하십니까’는 1월부터 현재까지 여성인권에 대한 대자보 부착 및 정기적인 좌담 형식의 글을 연재하는 한편 다양한 ‘안녕 연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의 날이던 8일엔 청계광장에서 부스 행사를 벌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국 중·고등학생이 모인 ‘청소년, 안녕들’ 역시 거의 모든 ‘안녕 연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동시에 독립적인 행사들을 주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삼일절을 맞아 ‘상반기 사업 계획 발표회’를 가지며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최근에 결성된 ‘예술가, 안녕들’은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목포시립교향악단 부당 정리해고와 여단원 폭행사건 규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성 소수자, 안녕들’과 ‘민변, 안녕들’ 역시 각각 성 소수자 단체들의 현수막 도난 사건과 대자보 훼손 사건 대응,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 개최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댁의 김치는 안녕들하십니까', '청소년,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 소수집단에게 대자보는 ‘발언권’
 
대학생들에게 대자보의 주된 의미가 ‘능동적 힐링’이었다면, 사회로 뻗어간 ‘안녕들 네트워크’에게 대자보는 ‘발언권’을 의미한다. ‘절실히 말하고 싶은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공통점이자 활동 동력이다.
 
한동대 신성만(심리상담학) 교수는 “다양한 네트워크 집단이 안녕들 열풍을 이어가는 현 상황은 자신들의 의사나 주장을 효과적·지속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귀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활동력이 필요한 ‘안녕 연대’와 영향력이 필요한 ‘안녕들 네트워크’는 상생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 지난달 25일 '국민파업대회' 현장에서 '댁의 김치는 안녕들하십니까'와 '청소년, 안녕들하십니까'의 깃발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

‘예술가, 안녕들’을 운영하는 정현석(20·소설가)씨는 “각 네트워크에 중요한 의제가 있을 때는 파급력을 지닌 ‘안녕 연대’에 도움을 요청한다”며 “‘안녕 연대’가 막 형성됐을 때는 다양한 의제가 한 곳에 집중돼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계로 분할되며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의 ‘안녕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단대신문 최형균·신수용 기자, 슬로그업 김상천 객원기자
nounsverbs@slog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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