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그 후] 대자보 열풍의 본질, 이념이 아니었다
[대자보, 그 후] 대자보 열풍의 본질, 이념이 아니었다
  • 기획취재팀
  • 승인 2014.03.24 21:50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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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 열풍 그후②] 대자보 열풍의 본질

글 싣는 순서 

-1부- <연재 예고> 연재를 시작하며

① 대자보로 뭉친 안녕 못한 사람들, '안녕 네트워크'의 현주소 (3월 18일)
대자보 열풍의 본질 (3월 25일)
③ 대자보가 대한민국 '키보드워리어' 들에게 미친 영향 (4월 1일)
④ 대자보 열풍이 만든 상품들, '안녕들하십니까 마케팅' (4월 8일)
⑤ 대자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밖에서 본 시선 (4월 15일) 

이 기획은 단대신문과 슬로그업의 공동 취재롤 이뤄집니다. 이념 논리를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안녕들' 열풍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번 화에서는 대자보 열풍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왜 한 순간에 식었는지 분석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대자보 열풍의 본질, 이념이 아니었다
언론이 짠 이념 프레임에 본질 가려진 대자보 열풍
“결국 청년들이 나서서 왜 대자보에 열광하고 실망했는가 직접 말해야”


보수언론은 대자보가 미웠다. 진보언론은 대자보가 내 것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대자보에 쓰인 말들은 애초부터 이념의 언어도, 집단의 언어도 아니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국민적 열풍은 이념을 떠나 ‘현실지표’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전까지의 사회운동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오늘을 이해하는 지표로서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대자보는 대학생 상당수가 사회·정치문제 무관심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음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사람들은 여전히 행동할 줄 알며, 그저 당파싸움에 끼기 싫을 뿐이라는 사실도 보여줬다. 이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계몽이 아니라 ‘인간적 공감’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알려줬다.

하지만 열풍은 제대로 대접 받기 전에 식어버렸다. 나이, 성별, 직업, 지역을 망라하고 국가적 공감을 이끈 열풍이 왜 그렇게 갑자기 식어버렸을까.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가 열린 날부터 100일간의 반응을 통계 냈다. 날짜별로 누적된 ‘좋아요’ ‘댓글’ ‘공유’ 개수는 열풍에 대한 대중의 호응도를 ‘수치화된 날짜별 통계치’의 모습으로 보여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자보 열풍이 힘을 잃은 이유는 열풍 자체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언론이 짠 이념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다. 주목할 날은 12월 17일·18일이다. 사실상 이 양일동안 대자보 열풍의 미래가 결정됐다. 언론이 주현우씨의 노동당 당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대자보 열풍을 이념싸움 프레임 속에 가둔 날이다. 그전까지 이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대자보 열풍에 호감을 표시한 사람들의 수는 하루 수만에 달했다. 최초의 ‘서울역 나들이 성토대회’가 있던 14일에는 호감을 표한 사람의 수가 하루 동안 무려 9만5천이 넘었다.

그러나 17·18일 이후 호응은 급감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호감을 나타낸 사람들의 수가 3천명대로 크게 줄었다. 이후 ‘경향신문사 민노총 진압사건’ 실시간 보고가 있던 22일을 빼고는 단 한 번도 만 단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안녕들 전국나들이’ 같은 대규모 행사를 벌여도 반응은 회복되지 않고 점차 싸늘해졌다.

대자보 향한 언론의 속마음


17일 보도된 대자보 관련 기사를 들여다보면 언론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열풍이 꺼지길 바라는 보수언론들은 ‘이념 논란’ ‘노동당원’ ‘대학가 두쪽’ ‘vs’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대자보 열풍을 이념싸움 프레임으로 몰았다. 실상은 달랐다. 대자보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엔 대자보에 반감을 표하는 대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극소수에 불과한 반대 대자보를 부각시킴으로써 ‘반반 이념싸움’이 형성된 양 대결 구도를 만든 것이다.

반대로 진보언론에서는 주현우씨의 노동당적에 대해 침묵했다. 기사를 몰아친 보수언론과 대조적으로 진보언론에서는 이날 많은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또 보수언론의 대자보 열풍 깎아내리기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도하면서도 주현우씨 당적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자보 관련 연재 코너들까지 만들며 열풍에 손 내밀던 진보언론 입장에선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열풍이 한풀 꺾인 12월 30일, <한겨레21>은 대자보를 대하는 언론의 속내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 ‘안녕들’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도 열망이 녹아 있습니다. 보수언론은 공격하고 진보언론은 훈수합니다. ‘무엇도 되지 않길 바라는 열망’과 ‘무엇이 되어주길 바라는 열망’이 다툽니다. …”

결국 대자보 열풍은 언론에 의해 이념과 집단의 문제로 둔갑했다. 스스로 ‘중도’라 여기고 이념싸움이라면 거리부터 두려하는 대다수 대중은 실망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주현우씨의 노동당 당적이나 당시 움직임을 이념싸움과 별개의 문제로 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념싸움 프레임은 주효했다. 선동에 휘말렸다는 배신감을 느낀 대중은 ‘애초에 왜 사람들이 대자보에 공감했는가’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중과 대자보는 멀어졌다.

지난 11일·12일·18일 3일간 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서 40여명의 학생들을 만나보니 실제로 학생들은 이제 대자보 문제의 핵심을 이념싸움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념이 대자보와 멀어진 원인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고려대 행정학과 남학생(24)은 “현재 대자보에 대한 학생들 입장은 찬반으로 갈린다”며 “찬성 입장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행위에 대한 찬성이고, 반대는 결국 밑에서부터 시켜 정치싸움을 하는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순수하게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지지하지만 정치가 개입해 선동하는 것은 싫다”고 덧붙였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강지현(21)씨는 “사람들은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고 움직인 것인데, 점점 내 얘기가 아닌 정치 얘기로 나가니까 흩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 법학과 조정한(25)씨도 “이념싸움에 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며 “학생들한테 가까운 문제부터 해결하고 차츰 사회문제로 뻗어나갈 거란 기대와 달리 갑자기 이념싸움으로 가니까 멀어진 것 같다”고 했다.

대자보의 본질을 말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자보 열풍의 본질이 이념이 아니라면, 이념이 개입하기 이전 대자보에 공감을 표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대자보를 직접 읽고 확인하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작년 21일 전국 27개 대학 등의 대자보 100개를 무작위로 뽑아 사용한 단어를 분석한 바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안녕(730건)’과 ‘세상·사회(317건)’였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이나 “각박한 세상” 등의 의미가 많았다. ‘취업·스펙·알바(233건)’ ‘생각·고민·불안(212건)’ ‘공부·학점·토익(202)’ 등의 단어가 뒤를 이었다. 반면 ‘투쟁, 애국, 해방, 단결, 혁명 등의 운동권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처럼 대자보에 적힌 말들은 목적의 언어가 아닌 공감의 언어였다. 거대담론 옹호가 아니라 개인적 고통의 호소였다. 이념 논쟁이라는 언론 보도와는 정반대의 성질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대자보 열풍은 이념 싸움이 아니라 대자보라는 계기를 통해 저마다 쌓인 감정을 쏟아낸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치 현안 역시 대자보 열풍의 한 축이었지만 핵은 아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자보 열풍에서 주목할 문제는 이념이 아닌 ‘국민들이 왜 이렇게 현실을 못견뎌하는지 이유를 파악하고 해소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김성해 교수의 분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자보 열풍의 진행과정을 담론 생성자에 대한 대중의 환상이 후광을 만들어내는 ‘셀러브러티 효과(Celebrity Effect)’와 셀러브러티 효과가 깨짐에 따라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칠링 효과(Chilling Effect)’로 분석했다. “주현우씨의 노동당 당적에 대한 공격은 담론 생산자에 대한 무력화 시도”라며 “만약 주현우씨가 노동당 당적자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형태로 흠집 내기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들이 직접 희망적 미래가 담보되는 세상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며 “결국 청년들을 대표하는 자가 나서서 ‘왜 대중이 대자보에 열광하고, 실망하고, 쫒아다니는가’를 직접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단대신문 최형균·신수용 기자, 슬로그업 김상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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