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그 후] 마케팅에 활용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그 후] 마케팅에 활용된 “안녕들하십니까”
  • 기획취재팀
  • 승인 2014.04.08 11:39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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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책 판매부터 영화 흥행까지 … ‘안녕들’이 마케팅에 미친 영향 이모저모

-1부-
<연재 예고> 연재를 시작하며
① 대자보로 뭉친 안녕 못한 사람들, ‘안녕 네트워크’의 현주소 (3월 18일)
② 대자보 열풍의 본질 (3월 25일)
③ 대자보가 대한민국 ‘키보드워리어’ 들에게 미친 영향 (4월 1일)
④ 대자보 열풍이 만든 상품들, ‘안녕들하십니까 마케팅’ (4월 8일)
⑤ 대자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밖에서 본 시선 (4월 15일)

이 기획은 단대신문과 청년 스타트업 슬로그업의 공동 취재로 이뤄집니다. 이념 논리를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안녕들’ 열풍에 얽인 이야기들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안녕들하십니까”와 ‘대자보’는 이 나라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였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분야인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이를 활용하고픈 욕구가 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안녕들’ 열풍은 신문 제목에서부터 도서 판매, 영화 흥행, 심지어 백화점 세일에까지 각종 마케팅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안녕들’과 ‘대자보’라는 키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분야는 역시 언론계다. 대자보 열풍에 얽힌 각각의 개별적인 사건 보도 이외에도 언론들은 릴레이 인터뷰 코너를 따로 만들거나 심층분석 등을 통해 안녕들 열풍을 적극적으로 조명했다. 더불어 대자보 열풍과 관련 없는 기사들의 제목에도 ‘안녕들’ 키워드를 차용했다.

릴레이 인터뷰 사례로는 <경향신문>의 ‘안녕들 대자보 주인공 인터뷰’ 코너와 <오마이뉴스>의 ‘대자보의 추억’ 등이 있다. <경향신문>은 대자보를 붙인 실제 학생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총 11회 연재했다. <오마이뉴스> 역시 과거에 대자보를 써본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대자보의 추억’ 특별기획 코너를 마련했다.

이와 달리 보수 언론은 주로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전국 27개 대학 등에 붙은 대자보 100장을 무작위로 뽑아 쓰인 단어를 통계내고 분석한 <중앙일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언론과 더불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프랑스의 <르몽드>, 아랍의 <알자지라> 등의 외신들 역시 대자보 열풍을 적극 조명하며 분석 기사를 내놨다.

한편 여러 언론사들은 이 시기 대자보와 전혀 관련 없는 기사들에도 대자보 키워드를 차용하며 슬쩍 검색 노출과 조회수를 챙겼다. ‘부부생활, 안녕들하십니까’, ‘브라질 국채 안녕들하십니까’ 같은 제목을 다는 식이었다.

대자보 열풍은 도서, 영화, 연극 등 문화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서 분야에서는 이윤 극대화 논리에 갇혀 학내 노동자들의 처우를 무시한 중앙대의 실태가 알려지면서 책 『기업가의 방문(어느 기업 대학에서 생긴 일)』이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출신 저자가 두산그룹이 인수한 뒤 기업가 논리가 판치는 모교의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한 내용이다. 중앙대 학생들로 구성된 ‘의혈, 안녕들하십니까’는 이 책에 직접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 책으로 엮어 나온 대자보.

‘안녕 연대’는 직접 책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1일 전국에 붙은 대자보 중 200개를 추려서 ‘안녕들 하십니까?(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이라는 이름의 책을 펴냈다. 수익금은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열풍이 문화계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안녕들’을 주제로 한 음악과 연극도 만들어졌다. 래퍼 데비와 MC한새는 사람들이 대자보에 적은 내용을 가사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실상을 꼬집은 ‘안녕들 하십니까’를 각각 발표했다. 가수 소명 역시 같은 제목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노사의 화합을 염원하는 노래를 내놨다. 이는 ‘안녕들’ 열풍을 사회운동적 차원을 넘어 마케팅 측면에서의 접근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대자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오는 10일 개봉 예정인 영화 <방황하는 칼날> 역시 대자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주연으로 분한 정재영 씨는 극중 살해당한 딸을 둔 아버지의 슬픔을 표현한 대자보를 친필로 작성했다. 제작사는 이를 언론과 SNS 등에 공개했다. 이 대자보 퍼포먼스는 약자의 억울한 사연을 고하는 대자보의 성격을 차용한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방송에도 이 같은 사례가 있다. KBS의 ‘진격의 역시자시 토크쇼 - 대변인들’은 방영 전부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안녕들 하십니까’의 의미를 되새기겠다”고 직접적으로 안녕들 열풍을 언급하며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이 프로그램의 첫 화는 지난 1일 동시간대 시청률 4.4%라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 국토교통부는 안녕들 잘못 건드려 망신 … 고발영화는 간접수혜 ‘대박’

한편 ‘안녕들’을 잘못 건드려 되려 화를 입은 경우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철도노동자 파업을 비판하는 내용의 ‘안녕들하십니까 2014’ 동영상을 내놨다가 국민들의 뭇매를 맞아야했다. 이 영상은 “열차를 타는 할머니들에겐 대자보를 써붙일 학교도 없고 열풍을 확인할 스마트폰도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역시 ‘박근혜 정부 성공 기원’ 자보를 부착했다가 국민들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 '안녕들하십니까?' 문구는 의류업체 행사 홍보에도 활용됐다.

이 시기에 개봉한 고발영화들은 ‘안녕들’ 열풍을 직접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대박’ 수혜를 입었다. 영화 <변호인>과 <또 하나의 약속> 흥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그린 <변호인>은 누적 관객 수 1136만7698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8위에 올랐다.

변호인을 제작한 위더스 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자보 열풍도 영화의 관객몰이에 한 몫을 하고 있다”며 영화의 대박 흥행 이유로 ‘개봉 타이밍’을 언급했다. 최 대표는 “현실과 타인의 삶에 관심 없는 청년들 때문에 제작에 돌입했는데, 개봉을 앞두고 청년들의 ‘안녕들 하십니까?’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며 “무슨 화답 같다”고 말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 입사 후 21살의 어린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실화를 그린 <또 하나의 가족> 역시 대자보 열풍의 수혜를 입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또 하나의 약속>은 20억원이 넘는 누적 매출액을 올렸다. 순제작비가 10억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작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작비 대비 두 배 이상의 벌어들인 셈이다.

이러한 흥행에는 안녕들 열풍도 직·간접적으로 한몫을 했다. 일례로 안녕 열풍과 연대 관계인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 연합(KOCA) 등은 영화관을 통째로 대관해 이 영화의 상영회를 갖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삼성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 역시 안녕들 열풍에 힘입어 역시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 ‘안녕들’ 열풍과 오바마 선거전략은 판박이

한편 ‘안녕들’ 열풍의 확산 과정은 오바마 선거캠프의 ‘바이럴 전략’과 흡사해 눈길을 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캠프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휴즈(Chris Hughes)를 ‘온라인 조직화 전문가’로 영입하며 ‘바이럴마케팅’을 선거에 적극 활용한 바 있다.

▲ 오바마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 '마이보닷컴'

휴즈는 페이스북과 비슷한 인터페이스의 ‘My.BarackObama(마이보)’ 사이트를 구축해 15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등록시킴으로써 그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투표일이 가까워졌을 때 마이보의 회원들은 20만 건이 넘는 선거 운동 이벤트를 준비하고 400만 명의 기부자들로부터 총 7억 5천만 달러를 모으는 등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을 실어줬다.

책 『바이럴 루프』의 저자 아담 페넨버그 등의 전문가들은 오바마 캠프의 바이럴 전략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한다. ‘간단명료한 캐치프레이즈’, ‘자발적인 확산 유도’, ‘롱테일(Longtail)의 법칙’이다. “나에게는 실적과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영광의 상처가 있다”라는 문장을 내건 존 맥케인(John McCain)과 달리 오바마의 캐치프레이즈는 “변화(change)”와 “그래, 할 수 있어(Yes, we can)”이라는 간결한 메시지였고, 이는 지지자들의 뇌리에 꽂히며 주효하게 작용했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이와 유사한 형태다.

▲ 샤이니의 맴버 종현이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대자보로 내건 모습.

또한 오바마 캠프는 “Yes, we can”이라는 슬로건의 자발적인 확산을 유도했다. 그중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Black Eyed Peas)의 윌.아이.엠(Will.i.am)과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등 스타들의 지지는 입소문 확산에 큰 힘을 발휘했다. “안녕들하십니까” 역시 샤이니의 종현, 제국의 아이들의 임시완 등이 SNS로 지지 의사를 밝히며 확산에 가속이 붙은 바 있어 이 역시 유사하다.

긴 꼬리라는 의미의 ‘롱테일의 법칙’은 20%의 ‘핵심 소수’보다 80%의 ‘일반 대중’이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기획취재팀: 단대신문 최형균·신수용 기자, 슬로그업 김상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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