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아래 줄 이은 미안한 기다림
뙤약볕 아래 줄 이은 미안한 기다림
  • 신수용 기자
  • 승인 2014.05.08 13:41
  • 호수 136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건이 발생 20일이 성큼 지났다. 실종자 중 구조된 인원 ‘0’. 4월의 황무지라는 말조차 부족한 잔인한 봄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 긴급 속보를 보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나왔다. 그날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네 가슴도 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며칠간 식탁에 놓여 진 신문 첫 장을 열지 못해 쌓아두었다. 슬퍼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게 미안하다. <편집자 주>

뙤약볕 아래 줄 이은 미안한 기다림

비록 수 시간을 선채로 있을지라도 이어지는 시민들의 한결같은 조문행렬

검은색 옷을 입고 시청역에서 하차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 5번 출구라는 노란 표지판이 역 곳곳에 붙여져 있었다. 평일 오후 3, 지상 5번 출구 앞, ‘50m’의 공간만을 남겨둔 채 분향소 앞까지 까만 줄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이날은 유독 화창한 봄 날씨였기에 어린 학생들을 기리는 조문 앞에 줄지어 선 어른들의 모습이 어쩐지 더욱 애달프다. 장시간 기다리는 조문객들을 위해 설치된 15개의 임시 지붕이 19개로 늘어났지만 봄날의 햇볕이 오히려 기다리는 이들의 어깨에 바늘처럼 박히는 모양새다. 서울 광장에는 매시간 수백 명의 시민들이 오가지만 적막함과 무거운 한숨만 자리한다.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8~10명 정도의 인원이 가로 열을 이루어 줄을 선다. 이마저도 광장을 반절로 나누고도 겹겹이 둘러싸는 긴 줄을 만든다. 한 곳에 수많은 인파가 오가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물이나 국화를 파는 노점을 찾아 볼 수 없다.

4시 경 유난히 많은 수의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끊임없이 모여온다. 이러한 연유로 자원 봉사자들은 청소년들을 따로 모아 짧은 줄을 만들어 맨 앞으로 보낸다. 한 중학생은 뉴스를 보면서 너무 슬펐지만 단지 여기에 오는 일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오늘이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라서 다들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한 시간 이상 서서 기다리지만 줄이 뒤로 밀린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바로 뒤에 서있던 백발의 노신사들도 아무 말이 없다. 조문을 마친 고령의 시민은 오늘 한 시간 정도 서서 기다렸다힘들지만. 봐라, (사람들이 계속 와서)지금도 줄이 안 줄어 든다며 말을 아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짧지 않은 시간, 임시 지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땡볕아래 서있지만 누구 한명 이탈하는 인원이 없다. 나지막한 한숨과 속삭임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다만 기다리던 일부 시민들의 손수건은 이마가 아닌 눈가를 향한다.

분향소에는 시민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국화가 마련돼 있다. 한 시간 반이 흘렀을까. 어느덧 제단에 가까워 오자 자원 봉사자들은 꽃을 나누어주며 주의 사항을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제단은 시민들이 헌화한 국화만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2분여의 단체 묵념이 끝나면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글귀를 써 넣을 수 있는 노란 색상의 리본과 메모지가 주어진다.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운영을 시작한 노란 리본의 정원은 리본을 걸 수 있는 302개의 기둥과 촛대로 구성되어 있다. 쉼표 모양으로 설치된 302개의 기둥 수는 세월호 사고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친 숫자다. 조문을 마친 이들은 이곳에 리본을 달거나 비치된 게시판에 붙일 노란 메모지에 저마다 무엇인가를 적어 넣는다. 같은 시각 분향소 근방 약 40m거리에서 근로자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 서울 지역 조합원 1만여 명(주최측 추산)의 집회가 조용히 열리고 있다. 도리어 파랑, 빨강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분향소 부스 앉아 노란 리본에 글을 적고 있다. 어디선가 시큼한 술 냄새가 풍긴다. 냄새로 취한마냥 먹먹해진 기자는 단 한 획도 적지 못한 채 리본을 묶었다. 처음으로 취재 현장에 도착하면 자동적으로 쥐는 펜과 수첩이 가방 안에 고이 모셔 졌다. 찰나의 셔터 소리에도 따가운 시선이 쏠린다.

서울 도서관 정문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51일 오후 5시 기준 총 89659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합동 분향소는 경기도 안산 지역의 합동영결식 당일까지 운영될 예정(날짜 추후 결정)이다. 이곳은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서울시 자원봉사센터가 함께 시민 분향소 형태로 이루어지며 분향소 운영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이다. 이 외의 시간에도 자율적인 분향이 가능하다.

신수용 기자 sooyongshin@dankook.ac.kr

 

 

 

신수용 기자
신수용 기자

 sooyongshin@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