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A 슈퍼페더급 1차 방어전 TKO승
WBA 슈퍼페더급 1차 방어전 TKO승
  • 김윤숙 기자
  • 승인 2014.05.20 12:31
  • 호수 13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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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A 소속 국내 유일 세계여자챔피언 최현미

 

 

지난 10일 서울 과학기술대학 체육관에 마련된 특설링에서 WBA(세계복싱협회) 슈퍼페더급타이틀 1차 방어전이 열렸다. 최현미(25) 선수가 페더급(57.15kg)에서 슈퍼페더(58.97kg)으로 체급을 올려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뒤 가진 첫 방어전이었다. PABA(범아시아권투협회) 밴텀급(53.52kg) 결정전 경기부터 시작해 최현미 선수의 승리까지 함께했다. <편집자 주>

 

서울 과학기술대학 특설링

 지난 10일 경기 시작시간인 1시보다 일찍 서울 과학기술대학에 도착했으나 경기장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대학을 헤매며 당황했다. 포스터에는 경기의 시작시간은 나와 있었으나 경기장의 정확한 위치가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연히 ‘체육관에서 경기를 진행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물어물어 체육관을 향하니 가는 길에 방어전 포스터가 길을 따라 붙어 있었다. 체육관에 다가가니 입구 옆에 대기 중인 구급차가 눈에 띄었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경기도 즐겨보지 않는 기자가 새로운 스포츠에 입문한다는 설렘도 잠시 부상이 많은 스포츠라는 생각에 긴장됐다.

 입장료는 2만원. 저렴하다면 저렴하고 살짝 가격이 높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미처 입장료를 생각하지 않고 건물에 들어섰던 기자는 현금 결제밖에 되지 않는다는 설명에 건물을 나와 다시 초조하게 대학 안에서 ATM기를 찾아다녀야 했다. 경기에 늦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지만 이런 걱정과 달리 1시에 예정됐던 경기는 1시 40분으로 미뤄져 여유롭게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들어서니 휑한 경기장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권투 경기를 즐기러 온 사람들 중에 아이와 함께 온 엄마 관객들도 많아서 눈길을 끌었다. 3살이 채 안된 아들과 함께한 한 관객은 “아이아빠가 권투협회와 관련해 일을 하고 있어 온가족이 찾아온 것”이라며 “오늘 최현미 선수 방어전 잘 치우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한 편에서는 선수들이 몸을 풀며 경기 준비에 한창이었다.

PABA 여자 밴텀급 결정전
유희정 VS 농부아 록프아이.아라

 첫 경기는 홍코너에 우리나라의 유희정 선수와 청코너에 태국의 농부아 록프아이.아라의 ‘PABA 여자 밴텀급 결정전’. 영화에서나 들어봤던 “홍코너 유-희-정!”하는 외침을 시작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태국 선수의 이름 발음이 어려웠던지 진행자가 살짝 얼버무리기도 했다. 첫 라운드에선 서로를 견제하는 듯 공격적인 느낌은 없었다. 초반 라운드에서 두 사람이 살짝살짝 눈치를 보며 격하게 파고들지 않자 관람객들이 “약해, 약해”하며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라운드가 끝날 때 또다시 마주한 영화 같은 장면 중 하나는 ‘라운드걸’의 등장이었다. 키도 크고 늘씬한 라운드걸이 다음 라운드를 알리는 판을 들고 링 위를 돌아다니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자도 같은 여성임에도 초반엔 선수들의 경기만큼 라운드걸의 존재가 너무나 흥미로워 링 코너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을 살펴볼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10라운드에 가까워질수록 선수들이 주먹을 다투는 합이 거칠어져 갔다. 두 선수 모두 머리길이가 어깨를 넘어갔기 때문에 단단히 머리를 묶었지만 청코너 록프아이 선수의 머리가 풀어헤쳐져 갔다. 힘이 들어간 펀치가 제대로 맞으면 관람객들이 “그렇지”, “좋다”, “그래”를 외치기도 하며 경기를 즐겼다. 경기에 몰입해 경기를 보며 관중석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초반 라운드에서 지루했던 기분이 시원한 펀치에 싹 날아갔다. 기자는 하드코어 영화를 즐기지 않기에 스스로 비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여겼지만 경기를 보면서 좀 더 확실하고 강하게 펀치를 날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 라운드에 다다르자 유희정 선수가 결론을 보려는 듯 상대 선수를 밀어붙여 링이 흔들리기도 했다. 라운드가 끝나고 코너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도 조금 지쳐보였고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가 끝이 나고 바로 심판들의 점수를 공개하며 챔피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주심이 링 위에서 선수들을 가까이 지켜봐 정확한 심판을 내리고 링 밖에서는 3명의 부심이 판정 점수를 매겼다. 부심들의 판정 점수를 합계한 결과, 유희정 선수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프로테스트 경기

 ‘PABA 여자 밴텀급 결정전’에 이어서는 프로테스트 경기가 있었다. 대진표에도 선수들이 소개돼 있지 않았는데, 프로테스트 경기는 승패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합격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에 한 쪽만 합격하거나 둘 다 합격하거나 탈락할 수도 있는 경기다. 프로의 경기가 아닌 프로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경기로 10라운드까지 가지 않고 2-4라운드동안 기량을 겨루게 된다. 프로테스트에 나온 선수들은 모두 남자선수들로 좀 전의 여자선수들의 경기에 비해 빠르고 강한 느낌이 전해왔다. 첫 번째 프로테스트 경기에선 2라운드 만에 끝이 났지만 1라운드에서 홍코너의 선수가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두 번째 프로테스트 경기에선 홍코너 선수가 밀리는 듯하다 3라운드에선 힘을 내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도 홍코너 선수가 코피를 흘려 흰 트렁크에 피가 흘렀으며 피를 닦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진행해 피 묻은 펀치를 주고받아 어깨에도 펀치자국이 선명했다. 프로는 아니었지만 프로만큼 치열하고 힘 있는 경기에 관람객들의 호응이 이전 경기보다 컸다. 프로테스트가 진행되는 중간 최현미 선수가 2층 관람석에 등장하기도 했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며 잠시 경기를 관람하다 대기실로 돌아갔다.  

한국 밴텀급 5위 신현제 VS 조엘 강

 프로테스트 경기들이 끝나고 한국 밴텀급 5위의 신현제 선수와 필리핀의 조엘 강 선수의 경기가 이어졌다. 파이팅 넘치게 라운드를 시작해 이어가다보니 신현제 선수가 넘어지기도 했지만 일어서서 경기를 재개하는 선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7라운드에선 조엘 강 선수가 신현제 선수를 얼굴 중심으로 가격하며 코너에 몰아넣기도 했다. 경기에도 익숙해지고 남자들의 경기에 좀 더 재미를 느낀 젊은 청년들은 선수들이 쉬는 시간 라운드걸이 등장하자 손을 흔들기도 했다. 


WBA 슈퍼페더급 1차 방어전
최현미 VS 롱마니트 시리완

 마지막 경기는 모든 이들이 기다리던 최현미 선수 WBA 슈퍼페더급 1차 방어전 경기로 도전자는 태국의 롱마니트 시리완이었다. 이번 경기의 주인공답게 입장할 때부터 호응이 남달랐다. 세월호 사고를 가슴아파하며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링 위에 올라섰다. 1라운드는 서로 눈치만 보다 싱겁게 끝났다. 그래도 라운드가 끝날 때 “최현미 파이팅”하며 응원소리가 경기장을 메웠다. 그 이후 이어진 라운드들도 가벼운 몸싸움만 있었을 뿐 4라운드가 돼서야 몸의 움직임이 커졌다. 최현미 선수는 상대선수의 주먹을 피하고 주먹을 날리며 4라운드를 마칠 때 살짝 미소 짓기도 했다. 5라운드 중에선 최현미 선수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경기에 집중했다. 8라운드 1분 19초에 이르러 시리완 선수가 흰 타올을 던져 판정까지 가지 않고 최현미 선수의 TKO 승으로 마무리됐다. 10일 있었던 경기들 중 가장 영화 같은 장면이었으며 이로써 최현미 선수는 10전 9승(3KO) 1무 무패의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짧은 인터뷰에서 최 선수는 “링 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방어전을 치루기 위해서 1억2천만 원의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에서 4천만 원을 지원했고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성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1천500만원을 최 선수에게 전했다. 규정에 따라 9개월 이내에 경기를 치르지 않으면 챔피언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치렀던 페더급 방어전, 슈퍼페더급 1차전 방어전도 (9개월을 앞두고) 긴박하게 치렀는데 2차 방어전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다”며 “스폰서도 없는 상황에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선수가 곤란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국내 유일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의 노력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그 때까지 한국 여성 복서 파이팅! 
 
 김윤숙 기자 flyingnab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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