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법한 ⑧ 천송이 코트와 공인인증서
있을법한 ⑧ 천송이 코트와 공인인증서
  • 이문희 기자
  • 승인 2014.05.24 09:28
  • 호수 13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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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김수현, 전지현 주연의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입었던 '천송이 코트' 를 구매하려는 외국인들이 공인인증서 시스템 때문에 결국 포기하게 되면서 졸지에 공인인증서가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가 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강한 해결 의지를 보인 끝에 6월부터는 외국인들도 '천송이 코트'를 구매할 수 있게 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공인인증서는 인터넷, 즉 전자상거래에서 사용할 신분증과 인감을 전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말 그대로 공인(公認)이니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에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공인인증서의 설치와 이용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온라인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조금 복잡해진다. 인터넷에 접속한 다음 원하는 물건을 고른 후 결제를 하기 위해서 'Active X(엑티브엑스)'로 만들어진 공인인증서 플러그인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한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보안 모듈을 설치한 후 7~8단계를 거쳐야 물건 하나를 살 수 있다. 운전할 때 빨간 신호등이 들어오면 좌회전으로 차선을 변경할 만큼 성격이 급한 필자같은 경우는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오프라인에서는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국가는 전혀 개입을 하지 않는데, 왜 온라인에서는 국민들의 구매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일까?  근대 사법(私法)의 대원칙인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 온라인상에서 물건 하나 사는데 인감증명서 같은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거래하라고 국가가 강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가 만든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면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불확실성이 감소되어 원활한 시장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 주요 논리다. 즉 온라인 거래의 불확실성을 빌미로 국가가 자연스럽게 가상공간에 개입했다. 이제 구매자와 판매자 둘 사이의 관계에서 구매자, 국가, 판매자의 다단계로 바뀌게 되었고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국가와 판매자 둘을 상대해야 되는 처지가 되었다.

현재 공인인증서를 생성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은 앞에서 언급한 'Active X' 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브라우저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인인증서 때문에 특정 회사의 프로그램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덕에 한국의 윈도우와 익스플로러 점유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결국 정부의 결정 때문에 국민의 대부분이 특정 외국 기업 제품에 종속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반대의 사례로 1초 만에 결제가 이루어지는 ‘아마존닷컴’을 들 수 있다. 아마존은 결국 온라인 쇼핑은 당사자 간 판단이 제일 중요하다는 기본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아마존닷컴'은 하나의 상징일 뿐 대부분 외국 기업들의 결제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결제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인인증서가 아니라 신용카드에 기록된 숫자뿐이다. 그 신용카드가 오용될 경우 구매자가 책임지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 전자자금이체법(EFTA)에 의하면 금융사고 발생 시 기본적으로 책임의 주요 소재는 기업에 있다. 국가가 상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시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 존재하는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비자들에게는 규제를 최소화하고 사회적 책임이 있는 기업에게는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 국가들의 역할이다.

소위 '천송이 법'으로 불리는 'Active X' 폐지 관련 법안 명칭 중 하나는 '국제표준에 따른 이용자 중심 웹 환경 조성 촉구 결의안'이다. 여기서 언급된 국제표준은 '국가의 불개입'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이다.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특정 국가에서 통제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김래영(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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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mh091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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