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護國報勳의 달’에 생각한다
‘護國報勳의 달’에 생각한다
  • 권용우
  • 승인 2014.06.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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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國報勳의 달’에 생각한다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매년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다. 6일은 현충일(顯忠日)이고, 25일은 6 ․ 25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6월 15일의 1차 연평해전(延坪海戰)과 6월 29일의 2차 연평해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들로 하여금 호국(護國) ․ 보훈의식(報勳意識)을 함양하기 위하여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각종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1일~10일을 ‘추모의 기간’으로, 11일~20일을 ‘감사의 기간’으로, 21일~30일을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정하여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 ․ 보훈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國家와 民族을 위해 身命을 바치다

 

반만년(半萬年)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외침(外侵)을 당하였으나, 그 때마다 슬기롭게 그 외침을 물리치고 겨레를 지켜왔다. 가깝게 지난 세기(世紀)를 되돌아보자. 1910년, 일본에 의하여 나라가 병탄(倂呑)되자 정든 고국(故國)을 등지고 혹은 중국으로, 혹은 미국으로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망명(亡命)의 길을 떠나 항일운동(抗日運動)에 신명(身命)을 바치셨던 구국지사(救國志士)들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조국(祖國)을 어찌 되찾을 수 있었겠는가.

또, 1950년 6 ․ 25 전쟁을 잊을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괴군(北傀軍)이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 걸쳐 일제히 불법남침(不法南侵)을 자행함으로써 시작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 그 절박한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내던진 전몰용사(戰歿勇士)가 아니었다면 어찌 북괴군을 물리칠 수 있었겠는가. 6 ․ 25 전쟁으로 인하여 80여만명의 우리 장병(將兵)이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을 당하였으며, 실종이 13만여명에 이르렀다.

 

어디 그 뿐인가. 제1, 제2 연평해전을 떠올리면 아직도 머리가 송연해진다.

때는 1999년 6월 15일, 북한(北韓)의 경비정(警備艇)이 연평도(延坪島) 인근 북방한계선(NLL) 2km 해역(海域)을 침범함으로써 일어난 제1 연평해전은 북한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되었으며, 5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우리 측도 고속정(高速艇) 325호 정장(艇長) 안지영 대위를 비롯한 장병 7명이 부상하였다.

북한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또 한 차례의 기습공격을 자행해왔다. 이 날은 한 ․ 일 월드컵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때로서 모든 국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북한은 우리 국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때를 틈타 등산곶 684호를 내려보내 연평도(延坪島) 인근 NLL을 침범, 85mm 함포로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이에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가 응전하면서 귀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윤영하 대위, 한상국 중사, 조천형 ․ 황도현 ․ 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이 전사하고, 18명의 장병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있었다.

 

護國英靈들의 忠魂, 가슴에 새겨야

 

이러한 북한의 불법적인 도발이 있을 때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이 없었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들의 충혼(忠魂)을 잊을 수 있겠는가.

8,9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씨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남긴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영웅을 홀대하는 나라 …. 더 이상 얘기 안 하겠습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100분의 1도 다 못했다. 마음에 담아두겠다”며 쓸쓸히 조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종선 씨의 ‘미국생활 3년, 눈물의 일기(日記)’가 필자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1년에 여덟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던 고통스러운 삶, 절대로 쓰러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꼭 살아남자”는 그녀의 피맺힌 다짐. “인천공항을 떠나며 그렇게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 뉴욕에서 살아남기.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할 수 있다. …”

이 피맺힌 김종선 씨의 말을 가슴에 새겨보아야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民主主義)의 터전 위에 자주국민(自主國民)으로서 떳떳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순국선열들과 전몰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그려보자. 2010년, 우리나라는 G20 정상회의(頂上會議)를 개최하고 그 의장국으로서 당당하게 세계무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2011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기구(DAC)에 가입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어디 그 뿐인가. 2011년 12월 5일에는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여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의 무역국가(貿易國家)로 우뚝 섰다.

또, 2012년 6월 23일에는 ‘20-50 클럽’에 가입하였다. 지금까지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 ․ 미국 ․ 프랑스 ․ 이탈리아 ․ 독일 ․ 영국 등 여섯 개 나라였는데, 우리나라가 일곱 번째로 가입하게 된 것이다. 여기 ‘20-50 클럽’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를 뜻하는데, 우리나라는 2012년 6월 23일에 1인당 국민소득 2만3,680 달러, 인구 5,000만 명을 충족하게 된 것이다.

2012년 3월에는 ‘2012 핵안보(核安保)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루어 내면서 이틀간 세계의 눈들이 대한민국 서울에 모이지 않았던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에는 우리 조국(祖國)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을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 이것이 국가와 국민의 책무이다.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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