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方限界線은 안전한가?
北方限界線은 안전한가?
  • 권용우
  • 승인 2014.06.0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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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方限界線은 안전한가?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1999년 6월 15일, 이 날은 제1차 연평해전(延坪海戰)이 발발한 날이다. 이 날, 북한(北韓) 경비정(警備艇)이 연평도(延坪島)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옴으로써 남북 함정(艦艇) 간 해전이 벌어졌다.

이 날, 우리 해군 고속정(高速艇)은 북한 경비정 선체(船體)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과정에 양측이 사격을 개시함으로써 해전이 시작되었다.

 

北韓, 제1, 2 延坪海戰을 촉발하다

 

그런데, 북측은 이미 6월 6일부터 매일 NLL을 넘어와 몇 시간씩 우리 영해(領海)에 머물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그들은 이를 자국의 어선(漁船) 보호라고 때를 썼다. 그러다가 15일 오전 9시경 420톤급 경비정 2척이 어뢰정 3척의 호위를 받으며 NLL 남쪽 2km 해역까지 남하면서 해전이 촉발되었다.

이에 우리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10여척을 동원하여 선체를 충돌시키는 밀어내기식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은 이에 25mm 기관포를 발사하면서 맞섰다. 우리 해군도 뒤질세라 초계함의 76mm 함포와 고속정의 40mm 기관포로 응사하여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을 명중시켰다.

이를 ‘제1 연평해전’으로 명명하였는데, 이 해전에서 북한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되었으며, 50명의 사상자를 냈다. 우리 측도 고속정 325호 정장(艇長) 안지영 대위를 비롯한 장병 7명이 부상하였다.

 

북한은 제1 연평해전이 있은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또 한 차례의 기습공격을 자행해왔다. 이 날은 한 ․ 일 월드컵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때로서 모든 국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북한은 이 때를 틈타 등산곶 684호를 내려보내어 연평도 인근 NLL을 침범, 85mm 함포로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이 때가 오전 9시 54분경이었다. 이에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가 응전하면서 귀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윤영하 대위, 한상국 중사, 조천형 ․ 황도현 ․ 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이 전사하고, 18명의 장병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있었다.

이 때, 북한 경비정은 우리 해군의 집중포격으로 화염에 휩싸여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0시 43분경 퇴각하였다. 이로써 이 해전은 40여분의 교전(交戰) 끝에 우리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제2 연평해전’이라 명명하였다.

 

제1, 2 연평해전을 생각할 때면,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내건 ‘햇볕정책’을 떠올리게 된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은 얼마나 많은 것을 챙겼던가. 금강산(金剛山) 관광의 댓가(對價)로 받은 거액의 현금을 비롯해 식량과 비료, 참으로 엄청난 혜택이 아니었던가. 우리 속담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북한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天安艦 폭침에 이은 延坪島 포격까지

 

우리 정부는 제1, 2 연평해전을 겪으면서도 아무 대책 없이 용만 쓰고 있었으니, 북한 호전집단(好戰集團)이 이 기회를 놓이지 않았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白翎島) 인근 해상(海上)에서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우리 해군 초계함 PCC-772 천안(天安)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우리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하였으며, 6명이 실종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이 때, 우리 정부는 미국 ․ 영국 ․ 호주 ․ 스웨덴 등 5개국의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 조사결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북한은 이 조사결과에 대해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생때를 썼다.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최종발표하였지만, 북한은 발뺌으로 일관했다.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국가가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설’에 동조한 나라들로만 구성되었다”고 트집을 잡기도 했다.

 

우리 군(軍)의 자세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천안함 폭침이 있은 후 “북의 도발에 2배, 3배의 대응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때가 지나고 나니 기강(紀綱)이 무너지고 말았다.

바다에서는 고속정이 침몰하고 강에서는 도하훈련(渡河訓練) 중이던 소형선박이 전복되는 등 한심한 꼴을 보였다. 연이어, 하늘에서는 정찰기(偵察機)가 추락하고, 땅에서는 기동훈련(機動訓練) 중이던 2대의 장갑차가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이 모두가 천안함 폭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사고들이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군기(軍紀)가 얼마나 해이져 있었는가를 알만하다. 이러한 상황이니, 북한이 기회를 놓지겠는가.

천안함 폭침이 있은지 8개월이 될 무렵인 11월 23일, 이 날 오후 2시 30분경 북한군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연평도(大延坪島)를 향해 포격을 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였다. 이 곳은 평화로운 어촌(漁村)마을이다. 말로는 ‘민족(民族)끼리’를 떠벌리면서 평화로운 민가(民家)를 해안포와 곡사포로 공격을 하다니, 북한이 같은 피를 나눈 동족(同族)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 해병대가 대응사격을 가하였으며, 군당국은 서해(西海) 5도(島)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만약을 대비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의 중경상자를 냈으며, 시설 및 가옥의 파괴로 말미암아 많은 재산손실을 입었다.

 

그 후로도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핵(核)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우리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또, 지난 4월에는 무인정찰기(無人偵察機)를 내려보내 청와대(靑瓦臺) 상공을 맴돌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윤영하급(級) 미사일 고속함을 조준하여 포탄을 떨어뜨리며, 위협사격을 가해왔다.

이제 그들은 평화의 가면(假面)을 벗어던졌다. 언제 그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에 관한 한 한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 군이 강군(强軍)으로 다시 태어나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어야 한다.

안보(安保)! 물샐 틈 없는 준비만이 그 최선이다. 그리고, 설마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NLL은 안전한가?’를 살펴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우리의 NLL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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