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龍奉仕賞 主人公, 그들이 있어서
靑龍奉仕賞 主人公, 그들이 있어서
  • 권용우
  • 승인 2014.06.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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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龍奉仕賞 主人公, 그들이 있어서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지난 2개월여 동안 우리는 참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4월 16일 476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號)의 침몰참사와 그 사고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초조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구조대원들에 의하여 시신(屍身)이 한 구씩 늘어날 때마다 마음을 조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국민들의 마음이 어떠하였던가.

 

이 번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 격포 앞바다에서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號) 침몰사고가 있은 지 21년만의 큰 참사이다. 서해훼리호는 362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탑승시키고 악천후(惡天候) 상황에서 무리한 운항 중의 사고였다. 어쩌면 이 번 세월호의 참사도 서해훼리호와 닮은 꼴인 듯 하다. 4월 15일 오후 6시 30분 인천항을 출발하여 그 다음 날 오전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서해(西海)의 짙은 안개로 인천항의 출발이 2시간 30분 가량 지연되는 바람에 도착 시각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항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더욱이 이 번 세월호 참사의 안타까움은 자기들의 안위(安危)만을 생각하고 탈출한 선장(船長)과 승무원들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무책임이 304명의 희생자(사망과 실종)를 냈으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만 하더라도 이렇게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 직후 사고현장에 어선(漁船)을 가지고 달려간 어민(漁民)들은 “승객 모두를 당연히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오전 9시 40분경, 침몰현장에 도착한 어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 때, 세월호는 이미 45도 이상 기울어져 있어서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내리거나, 배에 매달린 채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가 침몰되기 시작한 뒤 1시간이나 지난 오전 10시경에 “침몰이 임박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이 때는 이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배에서 탈출한 후였다고 한다. 여객선 선장과 승무원들은 비상시 승객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직업인이다. 그런데, 세월호의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은 직업윤리도 책임의식도 없었다.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승객을 남겨둔 채 배에서 탈출했다니, 참으로 코메디 같은 얘기다. 승객 수백명이 선체(船體)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는데, 선장과 선원 대부분은 살아남았다.

또, 세월호의 경우에는 선장이 휴가 중이어서 대리 선장이 운항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호에는 46개의 구명보트가 있었지만, 사고 후 제대로 작동된 것은 1개뿐이었다고 한다. 정원 920명의 6000톤급 여객선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을까 싶다. 어쩌면 이토록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불길 뛰어들어 一家族 구하다

 

그런데, 이처럼 멍멍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필자에게 참으로 신선한 기사(記事)가 있어서 눈이 번쩍 띄었다.

‘불길 뛰어들어 일가족 셋 구한 친절한 김(金) 경사’ - 이는 제48회 청룡봉사상(靑龍奉仕賞) 주인공들을 다룬 일간신문의 기사제목이다. 이 기사의 내용을 좀 더 보기로 하자.

“지난 2월 26일 새벽 1시 20분 전북 정읍경찰서 상동지구대 김 신(40) 경사가 몰던 순찰차에 긴급 무전이 날아들었다.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주택가 화재.’ 불이 난 지역은 슬래브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였다.”

그런데, 불이 난 지역은 김 경사의 담당구역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 경사는 순찰차 핸들을 꺾어 화재현장으로 갔다. 김 경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앞집까지 번진 상태였고, “살려달라”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혼자 생각으로 ‘세월호 선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려보았다. 김 경사는 “연기가 자욱한 거실로 뛰어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미처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 둘과 어머니를 업고 나왔다”고 한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아이들의 어머니까지. 김 경사. 그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속을 세 차례나 뛰어들었다. 참으로 그 용기가 가상하다.

“내 가족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이 말은 일가족 셋을 불길속에서 구해낸 김 경사가 한 말이다. 김 경사는 제48회 ‘청룡봉사상 신상(信賞)’ 수상자이다. 그와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은 그를 가리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경찰로서의 행동이 잘 정립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 뿐이 아니다. 주민들은 그를 가리켜 ‘친절한 김 경사’라고 한다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국민의 지팡이’가 아닌가.

김 경사뿐이 아니다. 인상(仁賞)을 수상한 황규열 씨와 한추향 ․ 김광연 씨 부부, 용상(勇賞)의 김인기 경위 ․ 이동수 경위 ․ 박일남 경사, 의상(義賞)의 정나미 씨와 고(故) 양성호 씨. 참으로 자랑스런 우리의 이웃이 아닌가.

이들이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이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맺는다.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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