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日生活圈의 새 歷史를 쓰다
一日生活圈의 새 歷史를 쓰다
  • 권용우
  • 승인 2014.07.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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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生活圈의 새 歷史를 쓰다

 

 

권용우

(명예교수 법학)

 

 

197077. 이 날은 서울 - 부산간 428km의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가 개통된 날이다. 이로써 전국을 ‘1일생활권으로 묶는 새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21일에 착공하여 25개월만에 완공, 개통됨으로써 수도권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대동맥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서울 수원 오산 천안 영동 황간 김천 구미 왜관 대구 영천 경주 언양 양산 부산을 잇는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다. , 1968년에 개통된 서울 - 인천간 경인고속도로(京仁高速道路)로 연계되면서 그 효과는 참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아우토반에 입맞추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196412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독(西獨, 현재 獨逸)을 국빈(國賓) 방문 중 승용차로 그 나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을 달리면서 우리도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에르하르트(Erhard, Ludwig) 총리의 조언도 한 몫을 했다. “각하, 경제발전을 하려면 고속도로를 깔아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라인강(der Rhein)의 기적을 몸소 둘러보고, 160km로 아우토반 위를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서독의 경제를 부흥케 한 것이 무엇일까?’를 상상했다.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영감(靈感)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승용차를 멈추게 하고, 도로에 입맞춤을 했다고 한다. 아우토반! 이것이 서독의 경제를 부흥케 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졌다.

 

 

때는 19674, 박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經濟開發) 5개년 계획기간 중에 국토개발사업의 하나로 서울 - 부산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놓았다. 6대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물자의 수송을 원활하게 하고, 이로써 원료생산지와 공장, 공장과 소비지를 짧은 시간 내에 접근시키는 수송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플랜이었다.

그리고, 그 해 1215국가기간 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이 발족하였다. 각처를 통해서 제출된 건설계획안을 토대로 430억원의 총공사비를 책정한 뒤의 일이었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5만대에 불과한 데 고속도로라니, 시기상조다’, ‘고속도로 건설보다 농산물 가격안정과 중소기업의 육성이 더 급선무다’, ‘먹고 살 것도 없는 마당에 고속도로가 무슨 말이냐’, ‘산을 깎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등의 환경파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등의 반대가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직접 헬기를 타고 고속도로 건설 예정구간을 둘러보면서 메모를 하고,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메모지를 들고 서울을 중심으로 도로망을 그리고, 인터체인지를 하나하나 표시했다. 드디어 196821, 착공! 박 대통령은 건설공사가 시작되자 침실 머리맡에 공사진척 상황표를 붙여놓고 매일 매일 전화로 진척상황을 체크했다고 하니, 그 열정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工事 시작 25個月만에

 

 

京釜高速道路 개통, 어제 竣工式 全長 428km 429원 들여’ - 이는 경부고속도로 준공을 보도한 197078일자의 어느 일간신문 머릿기사의 제목이다.

197077, 이 날 대구(大邱)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준공식에서 박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는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이며, 민족적인 대예술작품이라고 전제하고, “이 공사를 통해 우리가 저력과 무한한 에너지와 강인한 의지를 가진 민족임이 실증되었다고 덧붙혔다.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통을 보게 된 기적의 산물이다. 196821, 경부고속도로 첫 번째 톨게이트 근처에서 발파음을 터뜨려 기공식을 가졌던 날로부터 25개월만의 쾌거였다.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빠른 공기(工期)로 완성된 것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총공사비 42973백만원, 인력 8928천명, 장비 165만대, 철근 487백톤, 시멘트 6632천포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공사현장 간이침대에서 잠을 설치면서 작업을 독려한 건설회사 대표들의 고뇌가 숨어 있다. 기한 내에 전 구간 개통이 가능하냐 아니냐? “나는 흑자를 포기하고, 현대건설의 명예를 선택하기로 했다.” 밤 낮 없이 지프차를 타고 공사현장을 누비며 작업을 독려했던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의 말이다.

 

 

추풍령에 세워진 고속도로 기념비가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 대역사(大役事)를 우리의 힘만으로 완성시켰다니. 그리고, 이로써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15시간 걸리던 것이 4시간 40분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감격스럽지 않은가. 어디 그 뿐인가. 경부고속도로를 통한 물류이동에 힘입어 산업구조가 바뀌고, 지방도시와의 연결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앞당기게 되었다.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고속도로의 노래가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설래게 한다.

 

 

우리는 지금

한밤과 새벽의 어귀에 섰다

 

 

천년을 몇 번씩 살아온 겨레

또 천년을 잉태한

영원히 젊은 의욕을 안고

 

 

역사의 경사지에서

몸을 솟구쳐 일어섰다

 

 

……………………

달려라 승리의 길

달려라 통일의 길

역사를 창조하는 고속도로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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