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85세의 여인은 빨간 머리와 붉은 립스틱, 화려한 도트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도트를 최초로 예술계로 끌어 들여온 작가 쿠사마야요이. 본인의 역겹고 부끄러웠을 정신병을 가장 솔직하고 정직하게 드러냈을 때 그녀의 눈동자를 뒤덮던 혐오스런 환영은 독특한 예술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가장 괴로웠을 시간을 가장 화려하고 밀도 높게 펼쳐 놓은 그녀의 작품들 앞에 서면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앓고 있던 내면의 정신병들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만 오천 원으로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총 세 개의 층으로 나뉘어 져 있으며, 한가람 예술관 개인전 최다 작품(120편)을 자랑한다. 또한 몸으로 체험하는 예술의 기회를 주며, 설치, 조각, 영상, 회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가 앓고 있는 환영의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관람 그 이상의 경험 될 것이다. 많은 작품이라 보기 힘들 수 있으나, 스쳐지나 가기에 아까운 것들이 참 많다. 점 하나하나가, 그녀가 아픈 곳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 고통을 우리가 음미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 관람의 포인트다.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절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작품들은 놀랍도록 화려하고, 빈틈없고, 대담하고, 소란스러웠다. 또한 웅장했다. 하지만,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의 세계는 놀랍도록 잔인하고, 외롭고, 지독했다. 물감으로 꾹꾹 눌러 담은 캔버스 위에 그녀의 수많은 결핍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점 하나하나 그녀의 통증이 아닌 게 없다. 단순히 작가가 본 환영들을 따라서 옮긴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황장애로 인해 그 동안 느꼈을 사람들의 시선, 투병의 흔적, 원인 모를 강박, 혼란 등이 ‘망, 점, 선’을 통해 드러나 있다. 다양해 보이지 않는 형태들로 추상의 절정을 꽃피운 듯 했다. 여러가지 도형이나 사물을 끌어온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점과 선이라는 일차원 소재들로 수많은 작품과 수많은 감정들을 토해냈다.
이번 전시회가 재미있던 이유는 그토록 화려함 뒤에 조용하고 과묵한 어지러움 역시 함께 있다는 점이다. 1층에서의 작품들은 5초 이상 보고 있으면 눈이 저려올 만큼 색과 그림의 스케일이 화려했다. 강박의 자국과 생명력을 동시에 터트리며 과학책에서 볼법한 세포 분열 같은 무늬로 자력갱생의 힘 역시 뿜고 있었다. 반대로 2층의 작품들은 조용하고 고요하고 흑백의 컬러로만 채워져 몹시 단조로웠다. 재미있는 건 그 역시 혼란스러운 질서정연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캔버스 위에 마커 펜으로만 사용한 작품들은 심해의 물고기 떼 같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 벽화 같기도 했고, 별자리 같기도 했다. 무질서한 것들을 툭툭 던져서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 준 작품들이, 비슷하면서도 결코 같지 않은 엇갈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회화 뿐 만 아니다. 설치와 조각들 역시 나를 우주로 툭, 떨궈 둔 느낌을 갖게 했다. 혹은 우리가 작가의 병을 대신해서 앓고 있는 듯 했다. 병을 빌릴 수 있다면, 아마 그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갔을 때 기분일 것이다. 병을 빌려줄 수 있을 만큼, 한마디로 그녀는 아픈 것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이 됐다. 마지막 3층에는 거대한 강박이 드러난 작품이 피날레로 기다리고 있다. 숨을 죄어오는 느낌을 그대로 살린 매력적인 통증의 걸작이다. 마지막 전시실을 나가면, “The obliteration room”이라고 하여 관람객들에게 동그라미 스티커를 주고 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붙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간과 기념품점도 마련돼 있다. 그런 이벤트 역시 다리 아팠을 시간에 재미를 더해준다.
투병중인 현재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원을 집과 작업실로 삼아서 그림을 그리며 산다. 여행도, 문화생활이나 다른 특별한 것이 없다. 그녀의 정신병은 이제 ‘쿠사마야요이’만의 예술과 삶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느냐 하면,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예술가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여한솔 기자 5213213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