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에 대한 근심, 기우인가
싱크홀에 대한 근심, 기우인가
  • 황종원 (문과대학·철학과)교수
  • 승인 2014.09.18 13:18
  • 호수 1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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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도시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땅이 꺼질까 불안해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옛 사람들조차 그런 걱정은 우매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 옛적 중국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은 늘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이다. 하지만 땅이 꺼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기우만은 아니게 되었다.


땅이 꺼질까 하는 염려는 과거의 우리에게는 확실히 기우일 뿐이었다.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땅에서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땅이 꺼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가만히 있지 않고 땅을 파헤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지하철, 지하차도, 지하도뿐만 아니라 지하상가, 초고층빌딩 등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땅은 깊이 파인다.


이렇게 땅을 파 들어가는 이유는 대체로 삶의 편리함,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함이고 그밖에 마천루처럼 현대문명의 화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문제는 인간의 자기 확장적인 욕망은 어쩔 수 없고, 이 욕망의 충족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욕망, 기술, 편안함, 즐김이 우리의 생존욕구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업들은 기술의 혁신, 이윤의 극대화, 양질의 서비스 제공 등에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소비자의 안전문제는 늘 뒷전이다. 석촌지하차도 싱크홀의 원인은 삼성물산의 부실시공으로 밝혀졌다.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을 기술적으로 대충 처리하는 업계의 고질이 또 다시 드러난 것이다. 더군다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태도는 더욱 문제이다. 이번 잠실 싱크홀 유발자로 의혹을 받던 곳은 삼성과 롯데였다. 그런데 두 회사는 모두 줄곧 자사와 싱크홀이 무관함을 주장했다. 차이라면 삼성은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부실공사에 책임을 지겠다고 태도를 바꾼 반면, 롯데는 여전히 안전보다는 제2롯데월드 홍보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의 태도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경우 사고 직후에는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꾸려 싱크홀의 원인을 규명했으면서도 제2롯데월드 개장 허가 요청에 대해서는 왜 안전 검증을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에게 맡기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개장을 허가했다가 사고가 날 경우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역시 싱크홀 사고 예방 조치의 일환으로 지하통합지도 구축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시스템 구축에는 4년 넘는 기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로 국가개조를 외쳤으면서도 국민의 안전문제는 정부에게 여전히 최우선 과제가 아닌 듯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싱크홀의 문제는 당분간은 고스란히 국민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각자의 생명과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싱크홀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잠실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집값이 떨어질까 쉬쉬 한단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목숨과 돈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선인가? 이 문제에 대해 슬기롭게 대답하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과거에 기우로 간주되었던 것을 계속 근심거리로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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