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마지막 서커스단 ‘동춘서커스’
우리 나라 마지막 서커스단 ‘동춘서커스’
  • 이다혜 기자
  • 승인 2014.09.19 13:02
  • 호수 1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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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상에도 90년 이어온 서커스 매직

 

1925년 창단해 올해로 89주년을 맞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最古), 유일의 서커스단 동춘서커스. 쉬는 날임에도 황금연휴를 맞아 대부도를 찾은 가족과 연인 단위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려 쉬지 않고 공연을 진행한 우리나라의 마지막 서커스단을 5월 6일 오후 2시에 찾았다.  <편집자 주>

 

 

자랑스런 우리 문화로서 서커스의 재도약 기대

 

  

대부도로 가는 버스가 있는 안산역에 내렸다. 오랜만의 적게는 나흘, 길게는 닷새의 황금연휴로 주변 곳곳에 놀러온 사람들이 보이고, 마치 서커스단의 일원인 듯해 보이는 중국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안산역 밖으로 나오니 버스 정류장과 곳곳에는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기적처럼 돌아와” 등 애도의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슬픈 세월호 침몰사고를 뒤로하고 황금연휴로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유희로서 서커스를 찾은 기자의 마음이 조금은 조심스럽고 무겁다. 

 

한참을 온 길이지만 대부도 동춘서커스 상설극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123번 버스를 또 한 시간가량 타야했다. 조금 지나니 바다 향기가 난다. 멀리 보이는 뻘과 바다, 갈매기 소리에 버스에서 내리자 안산역에서의 복잡함을 조금 벗어내고 마음이 편해진다.

 

방아머리에서 내려 한산한 풍경과 바닷바람을 즐기며 조금 걸으니 풍차와 천막이 보인다. 2011년 안산시의 행정지원으로 풍력발전소 옆 방아머리문화공원에 세워진 상설극장이 서커스 극장답게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보는 서커스장이 한껏 신기한데, 시끌벅적하고 축제분위기인 영화 속 서커스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조용한 주변이 의아하다. 길게 놓여있는 레드카펫을 따라 매표소에 찾아가니, 관계자의 빠르고 재밌는 말에 맞춰 눈깜짝할 사이에 표가 발권됐다. 한 시간 넘게 남은 시간을 때우고자 주변에 즐비한 칼국수, 조개구이, 횟집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머니 사정에 맞춰 골라먹기 좋은데, 기자는 바지락칼국수와 보리밥을 맛있게 먹고 다시 서커스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20분전, 아까와는 다르게 공연장이 북적거린다. 옛날을 회상하기 위해 찾으신 어르신, 부모님과 자녀와 함께 찾은 부부들 등 여럿 가족과 황금연휴를 즐기러 찾은 연인들이 보인다. 서커스를 처음 봐 기대된다는 정지윤(7) 양은 “할아버지랑 오랜만에 놀러와서 좋아요. 서커스 빨리 보고 싶어요”라며 신나했다. 어린이날을 낀 연휴라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찾았다는 관계자도 “한가할 줄 알았는데 많이 보러와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분주한 서커스장을 들어가기 전에 너도나도 입구 앞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과자와 음료를 사간다. 서커스 볼 때는 새우깡이 일품이라는 어르신의 말씀도 들려온다. 정열의 빨간색으로 사방이 꾸며진 대기실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동춘서커스의 3대 단장인 박세환(63) 단장은 30년이 넘도록 서커스를 이끌어왔다. 박 단장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관광 산업이 서커스”라며 “한국만 서커스의 상승세를 못 이어가 아쉽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동춘서커스가 극, 쇼, 국악, 창, 마술도 다뤄 우리나라 대중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보다 긴 역사를 가졌음에도 현재는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박 단장은 앞으로 “정부의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 서커스 전용극장, 서커스 아카데미, 박물관 등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세계적인 공연단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서커스 중흥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매번 일일이 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박 단장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박 단장의 사명을 들으니 막중해진 책임감을 갖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간이좌석들을 연결해 영화관보다도 협소한 공간이다.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 수없이 많은 공연예술들에 비해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빨간 천막으로 둘러싸인 공연장은 기자가 겪어보지도 못했던 옛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옹기종기 자리를 어느덧 채운 사람들을 보니 기자도 알게 모르게 뿌듯해진다. 

 

단장이 이끄는 목소리에 공연이 시작하고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다. 아직은 다들 박수도 소극적이다. 하지만 첫 주자인 ‘쌍철봉 타는 남자’들이 더 높이 올라가고 더 위태롭게 움직이니 긴장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점점 관객들이 몰입하는 것이 느껴진다.

 

뒤를 이어 한 여자단원이 실크천을 들고 나온다. 예상이 되는 사람들은 제발 올라가지 말라며 벌써부터 긴장감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초조함에 떨리는 박수를 보낸다. 아름다운 조명을 받으며 올라간 단원은 놀라우리만큼 유연하고 강하다. 빨간 실크천을 휘날리며 공중 위의 발레를 선보인다. 아슬아슬한 공연이 지나가고 조금 어린 단원들이 나와 농구공으로 묘기를 부린다. 정확함과 역시 아슬아슬함에 역시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오고 마지막에 서로 탑을 쌓아 발로 농구공을 주고받는 퍼포먼스에는 유도하지 않아도 박수가 절로 쳐진다.

 

신기한 묘기도 있다면 웃긴 요소를 담은 공연도 있었다. 광대가 공을 돌리듯 모자로 저글링하기 시작하는데, 여럿이서 서로의 모자를 뺏어가며 묘기를 부릴 때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퍼포먼스가 박장대소를 자아낸다.

 

서로의 몸을 의존해 불가능할 듯한 자세를 취하는 ‘두남자 쑈’와 남자에게 지탱해 아슬아슬한 발레묘기를 하는 남녀의 쇼는 단원들의 떨리는 근육과 조심스러움까지 관객에게 전달된다. 웅장한 노래와 함께 시선을 떼지 못하고 성공할 때마다 관객들이 호응을 보낸다. 

 

그 뒤로 가녀린 여자단원이 동그란 링과 밧줄에 매달려 자세를 바꿔가며 하늘을 휘젓고 다녀 위태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기도 하고, 남녀가 하나 돼 실크천에 매달려 직녀와 견우를 연상하는 아름다운 자세로 선회를 그리기도 한다. 공중에 매달려 취하는 여러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손발에 땀을 쥐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20년 동안 저글링을 했다는 ‘저글링 박’이 나온다. 저글링으로 선사하는데 반응이 없으면 공연을 도중에 멈춰 박수와 환호를 유도한다. 그의 자만심 넘치는 태도와 포즈, 반응유도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화려하고 고난이도의 묘기도 볼만하지만 이런 것도 진정한 서커스의 묘미이지 않나 싶다.

 

링체조의 뒤를 이어 마지막 하이라이트도 역시 시작 전부터 오금이 저린다. ‘성사륜’이라는 하이라이트는 풍차처럼 돌아가는 두 개의 원안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돌며 묘기를 부리는 것이다. 관객들의 긴장의 목소리에 주춤 할 것도 같은 남자 단원 둘이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어가는 모습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하지만 이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행하는 단장의 목소리는 점점 더 신나지고 커진다. 단원에 대한 믿음과 공연에 대한 자신감일까.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린다. 서둘러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 감탄하기 바쁜 사람도 많다. 기자의 뒤에서 감상하던 박성완(48)씨는 “2만원이 아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다”며 “내 딸은 무섭다고 눈을 가리기까지 했을 정도”라고 공연이 만족스러웠음을 표했다. 

 

연일 박수를 치던 한 어르신은 “옛날에 여수인지에서 서커스를 두 번 본 기억이 있다”며 “우리나라 마지막 서커스라니 마음이 짠하다. 앞으로 나도 서커스도 계속해서 장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데 입구에서까지 단장과 단원들이 나와 인사를 드리고 있다. 매년 매일 다른 프로그램과 구성원으로 진행하니 소문도 많이 내달라고 역시 일일이 말씀을 전하신다. “공연 재밌게 봤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오는데 마음 한 켠이 짠하고 무겁다.

 

해외에서는 십 만원이 넘는 거금을 내고 서커스를 보는 이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처럼 서커스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고 서커스의 존립여부조차 불안한 것이 안타깝다. 생각해보니 이러한 인식마저 우리나라 문화 중 하나로 여겨지나 싶다. 공연예술대학들도 서커스는 가르치지 않는다. 곡예를 하고 묘기를 펼치는 것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기를 하는 것들보다 ‘하찮은’ 예술이라는 생각은 몇 개월, 몇 년을 수련해 위험을 무릅쓴 공연들을 펼치는 많은 단원들의 수고와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다. 정말 그 어르신의 말씀처럼, 계속해서 장수하고 내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가까운 문화로서의 서커스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한 문화가 되기에 충분한 동춘서커스의 전통이 계속되길….

 

이다혜 기자
이다혜 기자

 ekgp059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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