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이야기3.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지식재산이야기3.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 이철태(화학공)교수, 지식재산교육선도사업단장
  • 승인 2014.10.16 12:11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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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의 말이다. 특허의 시작은 발명이다. 커피 생각에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는데 커피는 나왔지만 종이컵은 나오지 않아 약이 오른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음료자판기 시대의 일등공신인 종이컵도 ‘필요’라는 기본적 욕구에서 나왔다.

종이컵은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난 ‘휴그 무어(Hogh Moor)’가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07년에 발명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발명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종이컵을 발명하게 된 것은 발명가였던 형 때문이었다. 휴그 무어의 한 살 위인 형 ‘로렌스 루엘랜’은  휴그 무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생수 자동판매기를 발명하였다. 그런데 형의 발명품에는 문제가 있었다. 생수 자동판매기에 사용되는 컵이 도자기 컵이라는 점이다. 이 도자기 컵들이 너무 쉽게 깨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기함 때문에 불티나게 팔렸던 이 생수 자판기는 차츰 인기가 떨어져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휴그 무어는 곧바로 문제해결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휴그 무어는 도자기 컵 아닌 다른 종류의 컵으로 종이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휴그 무어의 제안에 그의 형은 콧방귀를 뀌었다. 종이가 물에 젖으면 쉽게 녹거나 훼손된다는 것이었는데, 마침내 그는 물에 쉽게 젖지 않는 종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태블릿(tablet) 종이였다. 그러고는 그는 역사적인 종이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물에 젖지 않는 종이컵을 발명해낸 휴그 무어는 그 뒤 대학을 그만두었다. 형과 함께 자신이 발명한 종이컵을 사용한 생수 자판기 사업을 하였다.

그러나 성공을 기대한 그에게 어려움이 겹쳐 회사는 쓰러질 위기에 직면했다. 생수 장사만으로는 회사 운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무렵 ‘W.T.그래험’으로부터 종이컵만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하면 2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W.T.그래험의 제안을 받아들여 종이컵생산회사를 차린 휴그 무어의 종이컵 사업이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지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된 행운의 사건이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민간보건연구소에서 연구에만 전념하던 ‘사무엘 크럼빈’박사의 말 한마디, "인간을 바이러스로 구하는 길은 오직 1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 뿐이다"는 휴그 무어의 종이컵을 다시 위대한 발명으로 못박는 것이었다. 휴그 무어의 종이컵은 광고 한번 없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종이컵으로 큰돈을 모으게 된 휴그 무어는 다시 1920년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 일회용 종이그릇을 발명했다. 그리하여 휴그 무어는 종이 그릇 발명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 종이컵의 변환은 끝없이 지속됐다. 아이스크림 컵, 소주잔, 과자 컵, 라면 컵 등 다양하다. 놀이는 발명의 아버지이다.

이철태(화학공)교수, 지식재산교육선도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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