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리멤버 0416’
공감과 ‘리멤버 0416’
  • 구경남 (교육) 교수
  • 승인 2014.10.18 15:41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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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갖기 소망했던 일본산 샤프는 이제 문구점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FM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팝송은 청년 DJ가 아니라 이제는 중후한 옛 스타가 틀어주는 추억의 노래가 되어 소개된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꿈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은 외국산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수출하며, 세계 무역 규모로도 Top 10 안쪽이다.


주말 명동 거리가 한류의 매력에 빠진 ‘요우커’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이 오늘날 한국의 원동력이라고 칭찬한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가 무섭게 아이들을 교육시장에 내놓고, 그들은 누군가를 제치고 달음질치는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제 경쟁력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외양은 제법 그럴싸해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8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은 다른 국가들의 자살률이 유지, 감소되는 것과 상반되게 2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이 국내 최초로 어린이청소년 우울증 전문클리닉을 오픈할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미래의 한국이 걱정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가 보다.


지난 4월 16일, 아이들과 귀한 생명들이 우리 눈앞에서 어찌해보지도 못하는 사이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미래의 한국이 침몰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우리들을 엄습했다. 지금까지 애써 만들어 온 나라가 우리가 살고 싶고, 우리를 지켜주는 나라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리라. 그동안 우리는 누군가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나 아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 무감각해져 갔다. 영화 <마더> 속 엄마는 아들의 살인죄를 뒤집어 쓴 청년에게 ‘너는 엄마도 없니?’라는 말로 어긋난 모성을 강변한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참사의 진실을 침몰시키려는 ‘무시무시한 엄마’들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는 야만을 닮아 있다.


하지만 10월 6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엄마들의 모임인 ‘리멤버 0416’은 다시 한 번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참배하면서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마지막까지 유가족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한다. 배 안에 갇혀 아이들이 끝없이 외쳤을 ‘엄마, 엄마, 엄마…’라는 외침이 DNA의 경계를 넘어 인간애를 깨우쳐주었던 것이리라. 그동안 우리 모두는 앞만 보고 거침없이 달려왔고 부모, 자식, 친구, 동료들을 돌아보는 것을 잊고 살았다. 우리가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아니 나는 아직도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아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데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구경남 (교육) 교수
구경남 (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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