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문화
빨리빨리 문화
  • 하경대
  • 승인 2014.11.04 16:48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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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 깊게 자리잡힌 빨리빨리 문화
한국인의 특성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는 ‘빨리빨리’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초기에 배우는 단어들 가운데 ‘빨리빨리’가 꼭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빨리빨리’의 습관이 이제는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해방 이후 근대화를 목표로 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뤄지면서 국민의 생활방식 또한 그에 맞춰 가야했다. 그리고 이 ‘빨리빨리’문화는 오늘날까지 고착화됐다. 목표 달성과 함께 얻어지는 경제 성장의 대외적 지표는 어느덧 ‘근면 성실한 한국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했고, ‘빨리빨리’는 하나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다.
최근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며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화 통화보다도 문자 메시지가 익숙한 이른바 ‘엄지족’은 이제 스마트폰 유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은행 서비스도 은행에 직접 갈 필요가 없이 길을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에 접속해 즉시 해치우면 된다. 21세기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제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라 세계적 경쟁력으로 추앙되고 있다. PC통신부터 양방향성 소통에 대한 폭발적인 잠재력을 분출해온 한국인은 급변하는 신기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변용해냈다. 그 결과 한국은 제반 IT 인프라가 고루 발달해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와 순서가 있는 법이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해야 하는 일도 재빨리 해내야 인정받는 한국적 풍토는 부작용도 여러 차례 일으켜왔다. 이른바 한국이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던 90년대의 성수대교 사고와 삼풍백화점 사고, 그리고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사건은 ‘빨리빨리’ 문화가 불러온 부작용의 대표적인 예다. 빠른 시간 내에 일정한 성과만 거두면 된다는 결과중시와 성과만능주의의 어두운 이면이다. 문화현상으로서의 조급증은 또 다른 심리적 증상으로 파생될 수 있기에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속도가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는 사람들에게 그 속도경쟁에 참여하라고 끊임없이 권유한다. ‘패스트푸드’와 ‘패스트패션’은 그러한 속도경쟁이 낳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확실히 오늘날 한국이 선진 강국 대열에 올라선 것은 이 속도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까닭이 크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는 여유가 없기에 쉽게 지치고 각박해진다. 조급증의 이면에는 현재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빠름’을 요구하는 사회에 몸이 제동을 거는 것이다.
해결책으로 제시된 ‘다운시프팅’은 무조건 ‘느리게’를 의미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빨리 진행되는 사회문화의 지배적 흐름에 맞서 자기만의 속도를 찾자는 것이다. 이제 21세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아직도 희생을 감수해야할 만큼의 고속 성장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은 바쁜 현대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질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찾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경대 기자 5209065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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