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별곡 - 정(正)>, 이념의 충돌과 재편
<한성별곡 - 정(正)>, 이념의 충돌과 재편
  • 김홍백 연구원
  • 승인 2014.11.11 18:38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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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의 도(道)가 정(正)이다
17세기 이래의 동아시아는 ‘화이변태(華夷變態)’와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요약된다. 전자가 중화의 명(明)이 이적의 청(淸)으로 교체된 사건이라면, 후자는 19세기 후반을 전후한 서구적 근대로의 격변을 예고하는 흐름이다. 이른바 중국 중심의 자기 완결적 천하질서가 안팎에서 뒤흔들린 것이다. 천하의 중심을 ‘이적’이 차지하고, 천하는 동아시아 너머의 ‘서구’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이적의 문물을 배우자는 것이 ‘북학(北學)’이고 서구의 학문을 배우자는 것이 ‘서학(西學)’이다. 18세기 조선의 ‘실학(實學)’은 이처럼 화이(華夷)와 동서(東西) 간의 정신사적, 문명사적 충돌과 영향 속에서 배태되었다. KBS 사극 <한성별곡 - 정(正)>(연출 곽정환)은 정조(正祖)의 암살을 둘러싼 새로운 시대로의 격변과 좌절을 서사화하고 있다. 정조는 이 시대를 “청과 왜는 언제 또 우리에게 칼끝을 들이댈지 모르며, 양이(洋夷)가 상선이 아닌 군선을 언제든 조선의 바다에 갖다 댈 것은 자명한 이치.”라 진단한다. 역관이자 시전행수인 양만오는 이 시대를 “우리와 우리를 믿고 의지할 민초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이, 바로 이 나라 조선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랏님과 양반네들이 가진 총과 칼이 아니라, 바로 나 양만오와 여러분이 가진 돈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습니다! 돈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우리 상인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언젠가 반드시 옵니다.”라 진단한다. 서세동점의 격랑 속에 이른바 ‘제국주의’와 ‘자본’의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임금의 개혁정치를 주도하는 서얼출신 이조판서는 “조선 백성 절반 이상이 상놈입니다. 제 몸에 그 피가 섞였으니 비로소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피 아닙니까?”라 말한다. 국가 간의 화이가 흔들리듯, 신분 간의 화이 또한 재편되고 있다. 서얼출신 무관 박상규는 부르짖는다. “저는 누구의 잘못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 저마다 자신의 신념을 좇을 뿐. 헌데 왜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벽파의 박인빈이 “돈에 목숨 거는 장사치가, 얼굴에 목숨 거는 기생이 나와 다르냐 아니면 너와 다르냐? 사내 계집 각각 목숨을 걸고 지키는 싶어 하는 바가 엄연히 다르거늘, 왜 네가 하는 것이 옳고 남이 하는 것이 그르다는 것이냐?”라 일갈하듯,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존재한다. 이것이 드라마의 부제인 ‘(제각각의) 정(正)’이다. 18세기 지식인 유한준은 각각의 개아(個我)가 각자의 도(道)를 ‘도(道)’로 삼는다는 ‘각도기도(各道其道)’론을 제창하였다. 서양 선교사 로드리게스는 조선 사절단 정두원에게 “만국 전도에 대명(大明)이 가운데 그려진 것은 단지 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요, 지구로 논하면 나라마다 중심이 될 수 있다.”라 하였고, 홍대용은 지구(地球)와 지전(地轉)의 과학적 지식 위에서 화이의 상대성과 다원성을 논한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을 설파하였다. 모든 개인들의 삶과 사상은 그 자체로 긍정되며, 문명과 국가 및 신분에 있어 전통적인 중심과 변방의 위계는 해체된다. 제각각의 도(道)가 정(正)인 근대가 도래하고 있다. 김홍백(동양학 연구원)연구원
김홍백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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