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역사의 운명
<관상>과 역사의 운명
  • 김홍백 연구원
  • 승인 2014.11.11 18:40
  • 호수 13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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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관상은 ‘백성의 평안’으로 귀결돼야
과거를 바꿀 수 없듯 역사는 바꿀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그래서 종종 ‘운명’처럼 선험적으로 고정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운명을 파악하여 미래의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고 고안된 점법(占法) 중의 하나가 관상(觀相)이다. 과거에 벌어진 일(역사)은 바꿀 수 없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사고이다.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역사’라는 텍스트를 현재적 맥락에서 독해해야 하듯, 개인의 운명을 바꾸려면 ‘얼굴’이라는 텍스트를 현재적 맥락에서 독해해야 한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 속에 잠재해 있다. 얼굴에는 과거와 미래가 잠재해 있다. 그 개인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면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나라의 운명(역사)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관상>(한재림 감독)의 포스터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각각의 관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존 인물인 수양대군(이정재)은 이리상, 김종서(백윤식)는 호랑이상, 가상의 인물인 내경(송강호)은 구렁이상, 진형(이종석)은 황새상이다. 각 얼굴은 유사한 형상(속성)의 동물과 유비적으로 연계되어 각 개인의 실체(본질)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가령 수양대군과 이리는 대담하면서도 잔인하다는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관상만이 아니라 수상(手相), 점성술에 있어 얼굴과 손바닥, 천문이라는 텍스트에는 서로 다양한 것이, 또 서로 모순되는 것이 쓰여 있다. <삼국지>의 유명한 관상가 허소는 조조의 관상을 보고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했다. 얼굴이라는 텍스트는 양의적인 해석의 장(場)이다. 수양의 이마에는 역모할 상이 없지만 역모를 했고, 단종은 삼촌의 역모를 믿지 않았지만 내경이 거짓으로 점 세 개를 찍은 후에야 역모할 것을 믿었다. 예언은 상징으로 감각되는 순간, 타자를 구속하고 좌지우지한다. 관상을 믿고 정치에 끌어들인 단종(김종서, 내경)은 패배하고, 관상을 믿지 않고 스스로 정치적 주체가 된 수양대군은 승리한다. 영화에서 수양은 내경의 아들 진형을 죽이면서 “저 관상쟁이는 자기 아들이 저렇게 단명할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라며 비웃는다. 조카 단종을 몰아낸 계유정난(癸酉靖難)은 반세기 전 명나라에서 연왕 주체(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를 몰아낸 ‘정난(靖難)의 변’을 반복한 것이다. 그 연결 고리에 자신의 누이를 영락제의 후궁으로 보내고 스스로는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된 한확이라는 자가 있다. 이미 수양의 증조할아버지(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했으며, 할아버지(이방원)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과 아우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수양이 흠모했다는 당 태종도 형과 아우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수양과 당 태종의 치세는 정치적 라이벌에게는 잔혹했지만 나라와 백성에게는 안정되고 평화로웠다. 당 태종 말대로 “백성에게 이로우면 길한 것이고, 백성에게 해로우면 흉한 것”이다. 정치(전쟁)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 왕권에 기초한 국가의 질서인가?(武, 權道) 신권에 기초한 의리의 질서인가?(文, 經道) 문무의 균형자가 정도전과 세종이라면, 문의 경사는 정몽주와 사육신(생육신)이고 무의 경사는 이방원과 수양이다.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김홍백(동양학 연구원)연구원
김홍백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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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unew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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