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1급 시각장애인 여성 박사 윤상은 교수 : 손끝으로 세상을 보지만 꿈은 온몸으로 밀어붙인다
국내 첫 1급 시각장애인 여성 박사 윤상은 교수 : 손끝으로 세상을 보지만 꿈은 온몸으로 밀어붙인다
  • 채미듬 기자
  • 승인 2014.11.11 18:55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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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1급 시각장애인 여성 박사 윤상은 (사회복지·강의전담)교수

윤상은 교수(33)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녀는 남다른 노력과 열정으로 국내 첫 1급 시각장애인 여성 박사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손끝으로 세상보기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꿈을 향해 여전히 질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현재의 그녀를 만들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우리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출강 중인 윤상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직접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교단에서 보여지는 카리스마 와 달리 수줍은 소녀감성과 젊은 나이다운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자주>

인생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간단히 자신에 대한 소개해달라

현재 1급 시각장애인이다. 1kg의 몸무게로 예정일보다 약 2개월 앞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중 의사의 과실로 산소가 과다하게 흡입되어 미숙아 망막증을 앓게 돼 실명을 하게 됐다.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어린 시절 시각장애인으로 생활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친구들을 깊게 사귀지 못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생활을 하며 다른 아이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집에 돌아와 한 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시각장애인이지만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불편한 점이 있을 때마다 저시력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특권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같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같은 반 친구들의 개성이나 환경이 모두 달라 깊게 친구를 사귈 기회가 부족했고, 조금은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 『손끝으로 세상보기책을 보면 어린 시절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부모님과 많은 갈등이 나타나있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은?

부모님은 내가 장애가 있으니 위험한 행동이나 위험해 보이는 것들은 절대 하지 말라 당부했었다.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갈등을 겪었다. 타인들은 모두 일반글자를 사용하는데 내가 왜 점자를 배워야하는지 몰라 배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부모님께 크게 혼나기도 했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해야 하는 것들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깨달음은 한 번 정한 목표는 중간에 후회하거나 되돌리면 안 되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때의 대학시절은 어땠나?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대학시절부터 집에서 독립해 아파트를 얻어 같은 학과 친구들하고 지내게 됐다. 그 친구들은 내가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줬다. ‘어울림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이 동아리는 장애학생들과 비장애학생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였다. 석사와 박사과정 중에도 좋은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 여러 자료를 공유하며 즐겁게 학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20대일 때 정말 많은 곳을 여행했다. 국내의 명소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미국 등 많은 곳을 직접 가보고 체험했다. 물론 시각장애인도 여행을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받았는데, 여행이야 말로 삶의 용기를 얻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짚어보니 보람된 20대를 보낸 것 같다.

국내 첫 1급 시각장애 여성 박사인데,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석사과정에서 장애인복지학을 전공했는데 이때 많은 연구에 참여하며 장애인복지와 재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 장애인이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사례도 드물다. 내가 학위를 취득해 좋은 선례를 남겨 후배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학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선 신앙의 힘이 컸고, 논문을 지도해주신 교수님들을 포함해 많은 동료 선생님들의 지지도 컸다. 무엇이든지 시작한 일은 끝을 보려는 성격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강인한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대학원 졸업 후, 강의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학위를 취득할 때부터 학생을 가르치고 싶어 강단에 서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축적한 지식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소망도 가지게 됐다. 강의 자리를 얻을 때까지 오랜 공백 기간이 있기도 했지만, 작년 2학기부터 단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영향을 미친 사람은 헬렌켈러와 지금은 고인이 된 강영우 박사님이다. 특히 강영우 박사님께서 장애가 있더라도 오르지 못 할 산은 없다. 꿈꾸지 못 할 것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각인돼 이런 분들의 삶을 보며 사회인이 된 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사회복지학과 강의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리고 제일 기억 에 남는 에피소드는?

일단 학생들이 수업에 잘 협조를 해주고, 과제나 발표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학생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 하기 때문에 소통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 원래 성격이 고지식하고 워낙 무뚝뚝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런 모습을 고쳐보려고 애를 쓰지만 성격 때문인지 이런 점이 가장 힘들다. 지난 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어느 학생이 한 학기 동안 지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을 때 감동을 받았고, 내가 이 일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윤상은을 있게 만든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석사과정 중 40여일을 입원하며 생사를 오간 적이 있다. 의사들은 어떤 병인지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그땐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저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그때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더 어려운 일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병원복도를 하루 종일 계속 돌며 운동한 결과 40여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쉽게 좌절할 수도 있는데,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앞으로의 꿈과 비전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목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 여러 지식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고, 장애인복지나 재활에 있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도 힘이 돼주고, 학업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 또 사회적으로도 많은 공헌을 하면서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은 자신의 진로가 정해지거나 뭔가를 이루겠다는 꿈을 가졌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라. 또 내 삶의 주인은 라는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남들과 비교해서 생기는 열등감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채미듬 기자 coalem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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