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 승인 2014.11.12 21:40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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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까운 지인들이 ‘불가톡천민’이라며 놀리던 나를 오히려 부러워한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감청되어 왔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불거진 카카오톡 검열 논란 사태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안감을 가져다 준 탓이다. 어떤 이는 ‘카톡’을 탈퇴하고 사이버 망명을 한 상태다.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조차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꺼려지는 상황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동안 SNS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에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카톡에 가입하려 했는데 꺼림칙한 마음에 가입을 다시 망설이고 있다. 이제 내가 아닌 나를 소통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제출했던 나의 일기장에는 내가 없었다. 그 속의 나는 현실의 나와는 거리가 먼 만들어진 존재였다. 보이기 싫은 나를 억지로 보이자니 그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의 일기를 읽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굳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초등학교의 일기 검사 관행은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 일기 검사에 인권침해의 우려를 표명하면서 그 개선이 요청되었다. 개인의 사적인 대화나 견해가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검열되고, 공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지난 5일 국무총리가 국회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분위기를 전하는 발언으로 전혀 공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 언론감시단체의 평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발언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4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180개 국가 중에서 57위로 2011년 이래 3년 연속 내리막이라고 한다. 퍼포먼스를 행한 팝아티스트가 체포 입건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 엄단 범정부 대책회의’가 신속하게 개최되며, 대통령을 풍자한 개그 프로그램 다시보기 영상이 삭제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촉발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더 이상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제출했던 내 일기장처럼 현실의 나와는 또 다른 나를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국가임을 헌법에 천명하고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성취해 온 민주주의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였다는 사실을 구덩이 속에서라도 외친 이발사는 화병에 걸려 죽지 않고 무사했다.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구경남(교육대학원)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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