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구 영화감독 : 바둑과 액션의 절묘한 조합
조범구 영화감독 : 바둑과 액션의 절묘한 조합
  • 임수현 기자
  • 승인 2014.11.19 00:00
  • 호수 1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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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마라! 그 안에 ‘특별한 나’를 만들 기회가 있다”

[촬영, 조명 조수 등
현장 밑바닥에서 출발.
데뷔 후 ‘조 감독’만의
강점으로 꽃피울 밑거름 돼]

<신의 한 수>가 개봉해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를 꺾으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한국영화 중 최단 기간 내 100만 관객돌파를 기록한 <신의 한 수>. 두뇌싸움이라는 바둑을 액션장르에 포섭한 감독의 결단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던 셈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근엄한 자세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바둑돌을 딱딱 내려놓다가 수틀리면 판을 뒤엎고 주먹을 날린다. <신의 한 수>는 대체 누구의 두뇌에서 어떤 경로로 탄생한 영화인가? 지난 13일 일산 사무실에서 조범구 감독(44)을 만나 대국 대신 대화를 나눴다.  <필자 주>

▲ 본인의 어린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한마디로 많이 놀았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축구부에서 활동했으니 저절로 공부와는 멀어지게 됐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선천적으로 위가 좋지 않아 고등학교 때 12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했다. 위의 3분의 1을 절제했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년 동안 휴학하게 됐다.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땐 동급생이었던 친한 친구들이 없어졌고 그 때부터 처음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 어떻게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됐나.
위 수술을 한 후, 의자에 앉아서 하는 일은 건강에 좋지 않겠다 싶어 움직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부모님께서 장사를 하셔서 고등학교 졸업 후 나도 장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을 가야 더 나은 삶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때마침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면서 우연히 연극영화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마디로는 ‘막연히 연극영화과가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10대 때와는 완전히 다른 20대의 삶을 살았다고 들었다. 대학시절은 어땠나?
삼수를 해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92학번으로 입학했다. 당시 천안캠퍼스에는 주변이 논밭뿐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친구들은 통학을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기에 자취를 하며 지냈다. 일주일 용돈이 2만원으로 밥값하기도 빠듯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다. 10대 때 워낙 많이 놀아 대학에 갔을 때는 노는 것에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고, 오직 연극과 영화공부에 집중했다. 공부도 안해보고 책도 안 보던 애가 대학교에 와서 시작하자니 아주 힘들었다. 맞춤법도 잘 모를 정도여서 처음에는 단편 소설, 단편 영화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 인생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졸업할 즈음 10대, 20대, 30대의 사춘기가 한꺼번에 왔었을 때이다. 20대 때에는 사회로 들어가고는 싶은데 들어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 때문이었다면, 30대엔 사회 안에서의 나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힘들었던 것 같다. 기회가 많이 없고 스스로 뚫고 나가야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었기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 15년 동안은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힘들었다. 그때는 옥탑방 안에서 문을 나서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서워 사회와 단절돼 살았다. 문밖을 나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혼자서 영화공부와 시나리오를 쓰며 다음 영화를 준비했다.

▲ 영화감독 ‘조범구’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대학시절 남들이 꺼리는 조수부터 시작했다. 세 명이 할 일을 혼자 다 할 정도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선배들이 점점 많이 나를 찾게 됐다. 그래서인지 조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촬영부, 조명부 일을 하게 됐다. 과거에는 조명감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명부분에서 일하며 인정을 받게 됐고 오히려 이 점이 지금은 나에게 큰 무기가 됐다. 영화감독 중에는 조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빛이 굉장히 중요하고, 조명설계를 잘하면 공간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돈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성장의 발판이자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심은?
단국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다시 다니며 1년간 문학을 공부했다. 그 후 충무로 단편영화를 2년 반 동안 준비했는데 엎어졌다. 신인감독은 시작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영화가 무산되니 큰 좌절을 맛봤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또 실패할 것 같아 다시 도전하기 힘든 결심이었지만 스스로 직접 나를 데뷔시키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유명 기획사 투자를 받고, 공모전을 통한 상금으로 <양아치어조>라는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또 결과가 좋지 않아 다시 한 번 성장통을 겪었다.

▲ 잊지 못할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
평범한 학생이었던 조범구를 세상에 감독으로 데뷔시켜 준 졸업 작품 <장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7달 동안 공부하러 갔었다. 미국의 전원적인 면과 보수적인 면을 겪은 이야기를 준비해보자고 다짐했다. <장마>는 20대 중반의 남자와 여자가 청춘의 불안하고 무기력한 자화상을 그려내는 영화이다. 사실 그 당시 학교의 카메라 장비가 좋지 않아 초점이 많이 흐렸고,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려고 많이 생각했지만 학교생활 4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껴 울며 겨자 먹기로 완성했다. 그런데 <장마>가 제14회 부산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등 여러 상을 탔다. 영화감독을 포기하려고 했던 때에 오히려 영화감독으로서 좋은 입문을 하게 된 것이다.

▲ 흥행한 <신의 한 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시나리오만 1년 반을 작업했다. 그 사이에 제작진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반영했다. 캐스팅부터 끝까지 모두 내 의지대로 작업할 수 있도록 배우 정우성과 안성기가 완전히 감싸준 덕분이기도 하다. 또한 제작사와 투자사에서 전적으로 지지해줘서, 아무런 제재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사를 바꿔가며 쪽 대본도 많이 쓸 수 있었다. 배우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기도 하고 작가의 동의도 얻었다. 바둑과 액션을 조화롭게 다루기 위해 스토리보다 배우에 집중했다. 단, 히스토리가 있는 배우를 위한 캐스팅이 제일 관건이었다. 복수극이지만 인물묘사에 가장 큰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꿈과 다음 작품에 대해.
<신의 한 수>라는 좋은 기회로 지금까지 잘 왔다. 다음번에는 이것을 발판으로 겸손하게 더 좋은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영화감독으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기회를 얻기 위해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세상과 좋은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성장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원래는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오래된 꿈이었기에 나중에 예술영화에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 차기작으로는 내년 가을 쯤 블록버스터 형태의 첩보스릴러 영화를 낼 예정이다. 동북아시아의 중심이며 외세와의 충돌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배경으로 할 생각이다.

▲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정에 솔직해라! 영화는 감정의 흐름이 성패를 좌우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험은 실패의 기록이다. 즉 실패를 계속하다보면 실수는 줄고 결국 성공하게 된다. 실패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 스스로 특별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아야 하고, ‘Who am I’라는 말처럼 나를 알고 내가 가야할 곳을 두려워 말고 망치로, 해머로라도 뚫고 들어가야 한다. 스스로라도 분명하게 산다면 후회는 적고 조금 더 빨리 성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임수현 기자 32120254@dankook.ac.kr

임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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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12025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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