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기 교수 : ‘원칙을 존중하며 열정을 쏟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최현기 교수 : ‘원칙을 존중하며 열정을 쏟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 김소현 기자
  • 승인 2014.11.27 21:58
  • 호수 1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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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하고, 뚝심있게 일에 매진하라

‘매뉴얼하우스’의 주인공 최현기(건축) 강의전담 교수

 

죽전캠퍼스 사회과학관과 1공학관 사이를 지나가본 학생이라면 지붕이 뾰족한 작은 집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건축학과 재학생들 40명이 지난 여름방학 완성한 ‘매뉴얼하우스’다. 강의전담 교수 최현기 씨가 학생들이 직접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일주일 간 같이 땀 흘리며 완성시켰다고 한다. 지난 19일 우리 대학 죽전캠퍼스 앞 한 카페에서 그가 말하는 현장중심 강의와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필자 주>

 

▲ 인생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간단히 자신에 대해 소개해 달라.

나의 직업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나 스스로도 주저하는 부분이다. 『목조주택 시공실무』라는 건축 서적을 출판했고 집필중인 책도 있어 ‘건축서적 집필가’라 부를 수도 있고, 건축학과 수업에 쓰기 위해 모형을 만들며 그 일환으로 ‘매뉴얼하우스’도 교내에 짓는 등 스스로는 ‘교육발명가’라 칭하기도 한다. 또 현장에서는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마스터빌더’로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현장에서 했던 경험을 토대로 건축가가 될 학생들에게 현장 그대로의 콘텐츠를 담은 강의를 하고 있는 교육자로서의 삶에 몰두하고 있다.

 

▲ 스스로를 ‘원칙주의자’라 말하는데, 그 ‘원칙’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라는 말을 들으면 피곤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원칙’은 요령 없이 우직한 자세를 뜻한다. 긴 경력에 기대어 “내 말이 답 이오” 식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원칙대로 행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수 십, 수 백 년 전부터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원칙이다. 베테랑 건축가들의 혼이 담긴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은 집과 구조물을 만드는 첫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 건축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시기는 언제인가? 그 배경이 있다면?

나는 건축을 하기 전, 미술을 하던 사람이다. 학창시절 외우는 것을 싫어해 죽도록 그림만 그렸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공부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낙방은 당연했고 일단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전역 후, 스스로가 그림 그리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불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방황까지 더해가던 도중 건축현장에서 우연히 일을 하게 됐다. 이전까지 해왔던 미술과도 관련이 있고 ‘내가 찾던 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는 사회경험자를 뽑는 전형으로 들어왔다. 비록 현장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기 쉽지 않아 중퇴했지만, 현장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노년에라도 다시 한 번 학업에 전념할 생각이다.

▲ 단국대학교 중퇴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리 대학 교단에 서게 된 배경은?

어떤 건축학과 학생이 군대를 제대하고 목조주택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우리 대학 교수님 중 한 분을 찾아갔다. 그 분이 내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무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라는 조언을 하셨다고 한다. 그 학생이 내 강의를 듣고 만족한 후 교수님께 알려 교수님이 출강을 권고하셨고, 지금까지 교단에 서게 됐다. 나는 대학을 중퇴한 고졸 신분이라 단국대에서 학력이 가장 낮은 강사일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인정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 사회과학관과 1공학관 사이에 ‘매뉴얼하우스’가 지어졌다. 지은 이유는 무엇이며 학생들의 반응은?

현장중심의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여름방학동안 지은 것이다. 나의 수업을 들은 6명의 학생과 나머지 건축학과 학생들이 일주일간 고생해서 완성시켰다. 매뉴얼하우스를 시작하면서 망치를 처음 잡아보는 학생이 있었을 만큼 학생들 대부분이 실무에 취약했다. 그래서 시작할 때 조금 삐그덕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2D로 배운 건축을 3D로 완성시키는 것을 배우면서 일주일 간 학생들은 평범한 수업에서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 학생이 작업을 하면서 ‘현장 일 하는 분들이 진짜 힘들겠구나’하고 혼잣말 하던 것에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매뉴얼하우스를 다 완성한 후 학생들이 지금껏 들은 강의 중 최고의 강의였다고 평가해왔다.

 

▲ 지금의 ‘최현기’를 있게 만든 인생의 멘토는?

인생의 멘토를 꼽는다면 건축가 송재승 씨를 말하고 싶다. 이분은 내가 목조주택 일을 한창 하던 98년도에 만났는데, 인생 설계에 큰 지침을 제공해주셨다. 송재승 씨는 9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목조주택건축을 시작하신 분이다. 목조주택에 대해서도 인생의 멘토인 분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큰 깨달음을 주셨다. 규범에 얽메이지 않고 나만의 사회생활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 지금의 ‘최현기’를 있게 만든 터닝 포인트는?

좌절을 느낀 시기로 크게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군 제대 후 미술에 회의를 느끼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20대 시절과, 한국 목조건축업계에 대해 대단히 실망한 40대 초반이다. 앞서 말했지만 군 제대 후 중학교 시절부터 했던 미술에 큰 회의를 느끼고 방황했었다. 그러면서도 근근이 미술일로 먹고 사는 내 자신에 회의감은 더해졌다. 희망도 없고 건강은 악화됐다. 그 때 건축 일을 운명처럼 만나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몇 년 전 있었던 땅콩집의 유행으로 한국 목조건축업계에 대해 대단히 실망했었을 때다. 땅콩집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인해 그 건축가는 스타덤에 올랐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래서 그 때 한창 한국 목조건축업계에 환멸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진짜 현실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목조주택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매뉴얼하우스’ 탄생의 서막이 됐다. 일반 전세비용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비현실적인 땅콩집이 아닌 건축가들의 땀과 봉사정신으로 완성된, 건축주에게 효율과 만족을 주는 집을 짓자는 생각이 ‘매뉴얼하우스’를 탄생시켰다.

▲ 앞으로의 꿈과 비전이 있다면?

꿈이라는 단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나의 비전 중 하나는 미국에 목조주택 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지금은 영어를 못하지만 목표를 가진 만큼 열심히 영어를 배워 미국이라는 목조주택 일등 시장에 한국인 최초로 목조주택 베테랑 서적을 낼 것이다. 그리고 매뉴얼하우스를 더욱 번창시킬 것이다. 매뉴얼하우스의 취지는 건축물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비, 구조설계, 디자인, 자재비를 처음부터 세심히 매뉴얼화 해서 낭비를 줄이고 그에 따라 소유주는 자재비만 내면 된다. 또 지금 매뉴얼하우스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이를 완성시켜 매뉴얼하우스를 더욱 알릴 것이다. 그런 과정의 일환으로 매뉴얼하우스에 참여할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선택이 많으면 비전이 없다”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절실해야 한다. 나는 건축을 시작할 때 고졸의 신분이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요즘 학생들은 선택의 폭이 많아 절실하지 않고 시류에 따라 인생을 산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편하고 세련된 것만을 추구한다. 고민의 과정 끝에 나를 잘 알고 단점도 장점으로 만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강의실 자리에 앉을 때 그 자리가 절실한 사람이 있었음을 늘 가슴에 새기며 진지한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김소현 기자 52120554@dankook.ac.kr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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