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규 시인 : 글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영혼과 악수하는 이덕규 시인
이덕규 시인 : 글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영혼과 악수하는 이덕규 시인
  • 여한솔 기자
  • 승인 2014.12.02 16:54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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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 홍사용 문학관의 관장으로 있는 시인 이덕규 선생을 만나기 위해 직접 문학관을 찾았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기자를 맞이해준 시인은 젊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토목기사부터 농부, 그리고 시인이 된 지금까지 하고자하는 일에 애정과 뜨거운 관심을 놓지 않고 지낸다. 1998년 38살 현대시학에 등단하여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와 『밥그릇 경전』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집필활동과 함께 강연을 하는 그는 현재 동탄에 위치한 노작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지역 시민을 비롯한 방문객들을 위해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다양한 도서를 구비하는 활동에 여력을 다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시인의 열정적 태도는 전하는 말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의 20대 보다 빠르고 씩씩한 심장박동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이덕규 시인. <필자 주>

▲ 전에 하던 토목 기사 일은 어쩌다 그만두게 됐나.
솔직한 대답은 ‘하기 싫어서’였다. 내 의지가 있는 일이기 보단 생존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전에 대한 가능성만 보고 택한 일이었다. 마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 때문에 대학을 진학하는 것처럼. 그래서 10년 정도 그 일을 해나갔다. 이후, 돈은 잘 벌었지만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으면 난 평생 이 일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거란 걱정이 들었다. 그것을 그만 두어야 내 삶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거라 생각해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었다. 본격적으로 꿈을 향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제야 내 삶에 밑불이 트이는 것이 보였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업을 그만 둔 선택은 말 그대로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 그렇다면 일을 그만 두고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
농부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기반으로 하던 집안에서 자라 그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나에게 맞는 일이었다. 벼농사를 지었는데, 그 시기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책을 읽고 농사를 지으며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보냈다. 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는 것이 제일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그만 둔다고 해도 반드시 일거리는 꼭 생긴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어도 할 일은 반드시 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기였다. 먹고살 걱정과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걱정은 그냥 밥 먹기 위해 사는 것만 목표로 두는 것 같아서 싫다.

▲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시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직장을 그만 둔 때부터였나?
나에게 글쓰기는 늘 하나의 취미이자 애착의 대상이다. 그 어떤 시인도 ‘나는 시인이 될거야’ 라고 다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예민한 감성과 단어를 가지고 노는 것으로 갈증을 해소하는 본능이 있는 것이다. 오래 해오던 일을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결핍된 것들을 시로 채워갔고, 자연스럽게 등단과 시인의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글은 나에게 필연이었다고 본다.

▲ 시인이 되는 것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나?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다. 시인들은 저마다 타고나는 특수하고 예민한 시각과 감성이 있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어떻게 보면 장애나 질병 같다. 타고나는 감수성에 몸이 앓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시인이 되게 한 최고의 영양분은 시집이었다. 여전히 그렇다. 가장으로서 생업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와중에 나를 책임지고 성장시킨 것은 시집뿐이었다. 또한 시집은 본격적으로 꿈을 키워나가던 때 나를 크게 다독여줬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시집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등단 후엔 그런 시집이 쓰고 싶어서 죽어라 시를 썼다. 그리고 탄생한 시집이『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이다.

▲ 본인의 시집 중 유독『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가 있는가.
등단을 하고 5년 동안 아주 열심히 시를 썼다. 그 후 첫 시집이 나왔다. 대부분 작가들에게 첫 작품은 굉장히 남다르다. 작가의 유년과 매우 흡사한 영혼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순수한 그의 색깔과 감정, 그의 목소리가 가장 솔직하고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것이 우리가 첫 작품을 ‘처녀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의 처녀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는 순수에 가까운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인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다.

▲ 당신의 20대는?
20대는 나의 첫 터닝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운이 좋게 지방대학으로 진학 할 수 있었다. 지방대학 간 것도 운이 좋다고 할 만큼 난 우등생이 아니었다. (웃음) 잘 살거나 공부 잘하는 애들을 골려주던 것이 특기였던 나에게 스무 살 대학의 존재는 강렬한 충격과 에너지를 주었다. 당시 모든 대학생들은 병든 사회에 대해서 쿨럭이거나 가만히 몸져 누워있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나 밥을 먹을 때나 모두 세상 돌아가는 판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골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사회에 대한 부조리, 부패 거짓과 염증들이 보였다. 잘못된 게 무엇인지 보이고 그 안에서 우린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자주 이야기했다. 의견이 달라 주먹질도 해가며 열변을 토하던 그 영향력은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다. 대학생활과 나의 20대는 58명중 57등을 하던 내가 이면의 세상에 눈을 뜨게 했으며 여전히 타협하지 못하는 ‘시인’ 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게 만든 첫 번째 터닝 포인트다.

▲ 요즘의 대학생들과 비교해보면 본인의 과거는 어떤 것 같나.
그 시절엔 지금 만큼 일자리가 치열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격증이나 학점으로 앞길 걱정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해가 가면서도, 좀 안타깝고 불쌍하다. 지난 나의 스물한 살과 요즘의 스물한 살은 너무 다르다. 과거에는 세상에 대해 저항하던 가장 큰 세력이 대학생들이었다. 운동권이든 이념의 접촉이든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다들 먹고사는 것도 어려울 판국에 그들이 가지는 취업 고민이 가장 큰 문제 일 거라는 생각은 든다.
▲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 시기가 있었을 거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
‘극복’이란 단어는 적어도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불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시인이란 사람이 힘든 세상을 극복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애를 쓰겠는가. 나 역시 몸이 안 좋았을 때가 있고, 형편이 말도 안 되게 힘들던 시절도 있었다. 고통과 좌절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다. 그럴 때 시인은 그 절망 안에 자리를 펴고 산다. 깊은 우울의 끝을 견뎌서 이겨내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이 되는 것.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철저하게 깨지고 부서진 채로 살겠다고 선언하면 그건 ‘위대한 시인’이 되는 것이다.

▲ 대화를 하다보면 어딘가 여전히 20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내가 당신들 보다 젊다는 것’이다. 철부지라고 해도 괜찮다. 그 말이 싫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지금처럼 하며 살고 싶다. 세상과 타협하지도 않겠다. 그것을 종이 위로 드러내는 것이 내 숙명이다. 만일 내가 더 이상 시가 싫어져서 영화나 미술이나 음악을 하겠다고 덤빌지도 모른다. 물론 하고 싶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하겠다. 또한 대기업이나 탄탄대로를 가려고 맞지도 않는 일에 발버둥 칠 생각이 전혀 없다. 어린아이의 고집처럼 난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는 중이다.

▲ 앞으로의 꿈과 비전이 있다면?
꿈도 비전도 없다. 꿈과 포부를 가지는 순간 예술을 끝이 난다. 어른답지 않는 이야기 하나 하자면, 피부에 닿는 매 순간에 피를 데우며 사는 것이다. 그냥 바닥까지 치는 인생이 또 온다 해도 괜찮다. 지금처럼 이런 내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항상 좋은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운 기분으로 산다. 그 기분까지도 끌어안고 살고 싶다.

▲ 끝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업을 위해서 내 삶을 탕진하지 말자. 지나치게 먹고사는 문제에 우리가 목 매달 필요가 없다는 말 건네고 싶다.
 여한솔 기자 5213213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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