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절규
안중근의 절규
  • 김명섭 사학과 강사 ·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4.01 14:39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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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토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 안중근
이틀 뒤인 3월 26일은 105년 전인 1910년 내가 일본 침략자들에게 사형을 당한 날이오. 전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로 살인범으로 몰아 꼭 5개월만에 서둘러 처형을 단행했소.

허나 당시 일본 침략자들은 러시아에서 사건이 발생해 재판권이 없음에도, 보호국 조항을 확대해석해 나를 범죄인으로 넘겨받아 사법처리하였소. 또 아직 조선이 주권국가이어서 한국법으로 처리해야 함에도 나를 일본인으로 취급하였고, 몰래 일본정부에서 외무성 정무국장을 판사에게 보내 재판 전에 사형에 처할 것을 결정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사법살인이오 불법재판이 아닐 수 없소.

더욱이 나는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군인의 신분이므로 국제법상 포로로 대우해야 하오. 먼저 포로수용소에 가둔 뒤, 전쟁이 끝난 후 포로에 관한 협약에 의해 서로 포로를 풀어주는 것이 국제법에 맞는 관례이거늘, 일본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소.

물론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나의 유묵처럼, 죽음도 두렵지 않으며 항고할 생각도 없소. 내 일찍이 부친을 따라 19세에 천주교에 입신하여 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로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온당치 않은 줄 아오. 허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이 우리 조국을 침략하고 능력과 재능 있는 한국인을 모조리 살해하였으며, 중국과 러시아마저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려는 자를 제거하는 일은 동양의 평화를 위한 시급한 일이기에 거사를 일으킨 것이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통감으로 한국에 부임하면서 자신은 한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그 진의는 전혀 반대였소. 그는 한국의 명성황후를 살해했을 뿐아니라 총칼로 위협해 을사5조약과 정미년 7조약을 맺게 하였소. 또 고종황제가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으니 이 분을 폐위시켰으며, 한국의 산림과 광산·철도·농상공업 등을 일일이 늑탈하였소.

그는 일찍이 일본 명치천황의 부친을 시살한 대역부도한 자로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일본청년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그를 살려두면 동양의 평화를 해칠 뿐이오. 그는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전체를 전쟁터로 몰아 멸망에 이르게 하고 있었소. 그러므로 나는 총 한방으로 만인이 보는 눈앞에서 늙은 도적의 죄악을 성토하고, 동양평화를 위한 나의 지론을 남겨 뜻있는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우려 한 것이오.

1백년이 지난 오늘날 나의 예언대로 뤼순항이 동양평화의 근거지로 떠오는 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부디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모두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여 아시아 평화공동체의 방략을 세우고 실천하기 바라오. 그것이 내 유해를 찾는 일보다 급하고 또 중요한 일이기에 당부하는 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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