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4. 돈도 없는데 그놈의 아메리카노는 꼭 마셔야겠니?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4. 돈도 없는데 그놈의 아메리카노는 꼭 마셔야겠니?
  • 김선교(철학·3)
  • 승인 2015.04.01 15:14
  • 호수 13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커피 한 잔의 모순이 인간적인 이유
▲ 일러스트 사현진 기자

“내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이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기쁨과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멋있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필자가 저런 핑계를 댄다면 위선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무슨 맛인지 모르는 게 맞는 것 같다. 차라리 우연적인 정념에 의해서 마신다고 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용돈이 빠듯하여 종종 끼니를 거를 때도 있는데 학생식당의 치즈돈까스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의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신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다, 검소하게 살아라 등의 꾸중을 들어도 아무 말대꾸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도 한 때 동일한 비난의 화살을 타인에게 겨누었었다. 한 손에는 전공서적을, 나머지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여대생들을 보면 왜 그렇게 속이 뒤집어졌던지. ‘대체 스무 살, 스물한 살이 무슨 돈이 있길래. 사치스러운 과소비다. 분명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아닐 것이다. 본인이 수고해서 번 돈이면 저렇게 생각 없이 쓸 수 없을 테니까. 아버지가 피땀 흘려 벌어온 바로 그 돈일게 뻔하다. 저들은 멀리 아프리카에서 3초에 한 번씩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지각해야한다. 아, 된장녀. 무개념녀!’ 지금 돌이켜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의 찌질함(?)이다.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왕관을 쓰고는 의식 있는 시민인 척 했던 것이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 당시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던 그러한 여대생들이 구두를 신고 또각거리면서 옆에 지나가기라도 하면 왠지 모르게 아랫도리를 움찔거리곤 했다.
그렇게 경멸하던 그놈의 커피를 이렇게 열심히 사 마실 줄이야. 아니, 사실 이런 비합리성과 모순 자체가 ‘나’의 삶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상적인 논리로 설명되는 행동을 찾기가 더 어렵다. 낮에는 졸리고 피곤하다고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바로 눕기는커녕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 정도를 보고 잠자리에 든다거나, 용돈이 빠듯하다는 넋두리를 입에 달면서 비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위해서는 주저 없이 카드를 내미는 그 모순이 내 존재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 솔직히 매일의 가계부와 시간표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실로 무감각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 전체를 회색빛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다. 계획에도 없는 즉흥적인 행동들은 무색무취의 하루에 나름의 색과 향을 입혀보려는 일종의 몸부림일지 모른다. 아마 그러한 발버둥이 없이는 무감각의 소용돌이에 이미 힘없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고? 말도 안 되는 핑계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 고작 커피 한 잔 사 마시는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우연적인 행동에 이러저러하게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더 모순적이다. 니체의 말처럼 “비합리성 없이는 인간적인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감히 말하건대 그가 이성의 감옥에서 생의 의지를 해방시켰듯이, 필자는 무감각의 일상에 갇힌 정념에 자유를 가져다주려는 투쟁을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쏟아지는 잠에도 영화 한 편을 기어코 보는 것, 허기짐에 시달리면서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 또 여타의 모든 ‘쓸모없는’ 것들이 자신의 삶을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는 데에 가장 유용하다. 
앞서 인용한 문장은 커피 애호가로 잘 알려진 ‘황제’ 나폴레옹의 말이다. 저것보다 더 공감과 위로가 되는 그의 말을 여기에 마지막으로 싣는다. “무감각할 바에야 차라리 커피와 함께 고통 받겠다. (I would rather suffer with coffee than be senseless.)”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이미 노트북 옆에는 커피가 놓여있다. 아마 나는 내일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마시며 고통스럽게 배고플 것이다. 정말이지, 부디 아무 이유 없이.

김선교(철학·3)
김선교(철학·3)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