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3. 평가라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3. 평가라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 배한올(영화연출·15 졸)
  • 승인 2015.04.01 15:23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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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C+가 아니에요"
▲ 일러스트 사현진 기자

명절 증후군은 주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역시 명절에 병을 얻어 돌아온다. 오랜만에 만난 멀고도 가까운 친척이 묻는다. “그래 취업은 잘 준비하고 있지? 학점은 몇이니?” “2.0이요.” “….” 침묵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오랜만에 본 조카는 이제 새로운 이름을 가진다. ‘C+.’ 이런 상처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F 폭격기를 지나 전우들을 제치고 ‘꿀교양 꿀수업(높은 학점을 받기 좋고, 편한 수업을 부르는 요즘 말)’으로 달려간다. 수강신청 날의 PC방은 흡사 전쟁터이다. 무한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미생의 장그래처럼 부모님의 자부심이 되기 위해. 이 경쟁에서는 높은 학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취업을 하는 것만이 승리이다. 하지만 10%만이 승리자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이 게임에서 패자는 갈 곳이 없다. 
학점이라는 게임의 규칙은 허상이다. 학문마다 깊이와 폭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200명씩 되는 수업에서 우리 하나하나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결과를 평가 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어림짐작에 의해 숭덩숭덩 잘려서 무디게 분류된다. 우리를 담아내기에는 A, B, C, D, F 라는 단계는 8비트 수준 정도로 단순하다. 

억울한 결과일지라도 우리는 이 학점이라는 지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조차 나는 지표로 대체되니까. 대학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 모순적인 시선에 환멸을 느낀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학 시절은 빛나는 순간이므로 학점이 아닌 인생을 즐기라고. 해외여행에 연애에 스킨스쿠버 등.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학점은 자기관리의 일환이라고. 우리는 두 가지 시선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대학생은 만능이자 무능이다. 학점이 낮은 사람은 무능이라는 지표를 가지게 된다. 단 하나라도 제대로 된 지표를 갖고자 우리는 발버둥 친다.

세상은 ‘나’를 쉽고 빠르게 평가하기 위해 학벌, 학점, 직장이라는 간단한 지표를 들이댄다. 장 폴 사르트르는 타자를 ‘나의 세계를 훔쳐가는 특수한 존재’로 표현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를 바라보다가 타자의 시선이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순간 바라보이는 존재로 변한다. 내 주변의 세계에서 나는 점차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의 세계를 훔쳐가는 자’라는 의미에서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지표는 타자의 세계이다. 나는 나의 보여진 존재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가지지 못한다. CCTV처럼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에 대한 평가를 아주 빠르고 단순하게 내리겠지만 우리는 그 세계를 갖지 못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가 속에 갇히고 만다. 나의 지표를 확인하고 나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은 폭력과도 다름없다. 그 때 내 삶의 무게는 아주 가볍게 환원된다. 보여지는 자는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래, 지표로 대체될 때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우리는 이 공포를 이길 수 있을까. 샤르트르는 타자에게 취할 태도로 두 가지를 들었다. 타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이 자유에 의해 그려지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내가 내 안으로 흡수하는 태도. 혹은 내가 타자를 객체화하는 태도. 세상의 기준에 따르거나 나대로 살거나. 아무도 모를지라도 우리는 오늘도 세상 속에 던져져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만이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둘러싼 무수한 경우의 수가 만들어낸 학점이 우리 삶의 지표가 될 수는 없다. ‘나’라는 개인의 신념과 노력이 단 하나의 지표로, 학점과 유사한 세상의 딱지들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열정과 노력, 그것을 위한 나의 선택과 행위는 폄하될 수 없는 나의 실존이다. 나의 실존은 내가 만들어 나간다. 노력하는 내 자신에게 어머니의 자부심은 잠시 밀어두자. 내 삶의 주체는 나이고 결국 타자는 타자일 뿐임을 오늘도 곱씹는다. 그리고 말하리라. “큰아버지. 제 인생은 C+가 아니에요.”

배한올(영화연출·15 졸)
배한올(영화연출·15 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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