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리브로! 1. 기획을 시작하며
비바, 리브로! 1. 기획을 시작하며
  • 김남필 홍보팀장
  • 승인 2015.04.01 15:25
  • 호수 13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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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열어 책읽기의 쾌락을 맞이하라
# 1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책에 관해 뭔가를 쓰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시나브로 꿈틀대면서부터. 이럴 줄 알았다. 그 욕망을 실현할 그 기회가 온 이 순간에 정작 나는 책에 대해 한 줄도 쓸 만한 ‘얘깃거리’가 없음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지혜의 숲이 있음은 알 되 그 숲의 책나무(書林)들을 슬슬 쓰다듬으며 배회를 했을 뿐이라는 것. 진지한 책읽기, 지식의 책읽기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딱히 해줄 말도, 읽을 만한 글쓰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

# 2

고등학교 때 영어단어 암기를 위해 콘사이스 사전을 한 장씩 외우고 씹어 먹던 풍습(?)이 있었다. 코뿔소의 뿔을 먹으면 불세출의 정력을 갖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듯이 간혹 ‘외우는’ 노력은 소홀히 하고 ‘씹어 먹는’ 데만 주력하는 얼뜨기가 있긴 했다. 그렇다, 바로 내가 그 얼뜨기여서 딱 한 장을 먹어보긴 했다. 물론 영어 단어 실력(한 장만 먹어서였던가?)은 전혀 응답하지 않더라. 그러나 간절했다.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욕망만큼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패착이지만. 그 간절함이, 터무니없는 욕망이 이번엔 ‘좋은 책을 권함’이라는 일에 꽂힌 것이다.

# 3

간절하게 소망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불량 독자이긴 한데 콘사이스를 씹어 먹던 그 간절함으로 함께 읽을 만한 책들을 찾아본다면 그 또한 유익하지 않겠는가.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식이지만 좋은 일이라면 무작정 시작하고 보는 게 도리이다. 거기에 몇 가지 원칙은 누워보려고 한다. 우선 고전의 반열에 든 책은 열외로 한다. 다른 자리에서 얼마든지 추천받을 터이니. 슈퍼 베스트 셀러도 피한다. 미디어와 팬돔의 열광에 휩슬리고 싶지 않으니까. 재밌어야 한다. 가뜩이나 ‘맛폰’에 빠진 독자들에게 ‘딱딱한 책읽기’로 부담주기 싫으니까.

# 4

“한 권의 책을 출판할 때 작가는 익명의 남녀의 무리 속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새떼를, 피에 굶주려 야윈 흡혈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독서노트를 묶은 책 『흡혈귀의 비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책읽기는 결국 작가가 풀어놓은, 그것도 사색과 번뇌, 방황과 모색, 오랫동안 전해오는 삶에 대한 경외를 빨아먹고 자란 흡혈귀에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내놓는 일이다. 드라큐라는 문을 깨부수고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그 방의 주인이 열어놓은 창문을 통과할 뿐이다. 그 방의 주인은 이미 흡혈의 쾌락을 알고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그대들도 감성의 창문을 열어두어라. 날아오른 책들이 들어오도록. 잃을 건 시간이고, 얻을 건 쾌락이다. 비바! 리브로!

김남필 홍보팀장
김남필 홍보팀장
김남필 홍보팀장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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