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독일경제를 배우지 말자
백묵처방 - 독일경제를 배우지 말자
  • 박동운
  • 승인 2003.11.12 00:20
  • 호수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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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운
<상경대학 상경학부 경제학전공> 교수

지난 7월 ‘노동시장 유연성’에 관한 필자의 저서가 출간되자마자 한 독자가 짤막한 코멘트를 e메일로 보내왔다. 내용인즉, 제목은 “침소봉대, 논리비약”, 내용은 독일경제는 노조파워가 아닌 통일비용 때문에 침체에 빠져 있다는 것.
필자는 바로 답신을 보냈다. 내용인즉, 지적하는 쪽 번호 두 군데만 읽어보면 내 시각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두 군데의 내용은 이러하다―한 군데는, 독일은 사민당이 집권한 후 1976년 노동자경영참여제도를 입법을 통해 도입함으로써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다른 한 군데는 독일은 1970년까지는 성장률이 4.5% 이상이었고 1960년대의 연평균 실업률은 놀랍게도 0.97%였지만, 사민당 집권을 계기로 노조천국이 된 후 1970년대부터는 성장률이 10년마다 2.7%, 2.6%, 1.4%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고 2002년에는 OECD 국가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낮은 0.2%를 기록했다는 것.
물론 현재의 독일경제가 통일비용 때문에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다만 필자는 독일경제는 통일비용이 아닌 노조파워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중병을 앓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저명한 독일인들도 우리에게 이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 5월 독일 자유주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의 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게르하르트 라이힐러 박사는 한국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독일경제의 가장 큰 패인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한 후 “너무 오랫동안 자유주의 원칙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자답했다. 세계 최하위 수준의 생산성, 10%가 넘는 실업률, 0.5∼0.6%에 불과한 저성장… 등을 지적하면서 라이힐러 박사가 내린 결론은 짤막했다―”독일경제를 배우지 마시오.”
또 지난 11월 초 한스 티트마이어 전 독일 중앙은행총재는 한국에서 가진 ‘유럽과 독일경제에 대한 전망’이라는 강연에서, “독일병을 치유할 유일한 처방전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사회복지를 축소하는 길뿐이다”고 강조한 후 “한국은 독일의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비싼 대가를 치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저서에서 독일병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독일은 1970년 이전에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노래했지만 사민당이 정권을 잡은 후 노조파워, 노동자경영참여제도, 경쟁을 허용 않는 교육제도 때문에 독일병이 발병한 것이다. 특히 독일은 노조천국이 되어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만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어떤 주요인사들은 독일경제를 모델로 삼아 이를 한국에 도입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모델의 하나가 노동자경영참여제도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이 제도를 도입하려하다가 한국 실정에는 아직 빠르다고 판단하여 종업원지주제도로 선회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발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필자는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이 1991년에 펴낸 『소득분배론』을 살펴보았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한국의 분배정책 방향’ 7가지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첫째가 ‘노동조합의 활성화와 경영참여의 도입’이다. 이렇듯 한 학자의 소신이 정책에 반영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필자는 한국이 노동자경영참여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한국경제는 독일경제처럼 망할 것이라고 우려해 오고 있다. 노동자경영참여제도란 무엇인가. J. 바넥이 쓴 『참여의 경제』를 보면 그 요체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참여의 경제제도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기본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하고…둘째, …기업소득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등으로 요약된다. 이 두 가지 요소만 가지고도 노동자경영참여제도가 무엇인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경영참여제도는 한 마디로 사회주의 원리와 똑같다. 사회주의에서는 국가가 경제를 경영하지만 노동자경영참여제도에서는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한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독일경제가 말해준다. 2003년 전반기에 독일경제는 성장률 마이너스 0.15%를 기록하자 사민당 당수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독일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정책에서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정책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일경제를 모델로 삼으면 안 된다. 독일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하자―한국은 독일경제를 배우지 말자.
박동운
박동운

 <경제학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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