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우 한국문화기획꾼 : 아리랑과 함께 세계를 누비다
문현우 한국문화기획꾼 : 아리랑과 함께 세계를 누비다
  • 이민지 기자
  • 승인 2015.04.06 01:48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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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마주한 상황에서 날개를 달아준 한국문화

한국문화기획꾼이란 무엇인가.

한국문화기획꾼이란 내가 만든 창조직업이다. 전 세계인들과 우리 국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재밌고 쉽게 그리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젠 아리랑스쿨에서 양성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바뀌었다.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 기수 20명씩 뽑고 있으며, 벌써 3기 모집을 눈앞에 뒀다. 한 달의 양성과정이 있으며 수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받아 일 년의 심화과정을 갖는다. 그들과 함께 재밌는 기획을 한다. ‘한여신(한복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토크콘서트와 다 같이 갓을 쓰고 신이 되어 고민 상담을 해주는 갓 파티가 있다.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심화과정 친구들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문화기획꾼이 되기로 한 계기는?

아리랑유랑단을 꾸려 세계일주를 하던 중 많은 외국인들, 재외동포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장구가 없어서 박스로 연습하는 우리 동포들을 뉴욕의 재외동포 할머님들이 아리랑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태어나서 본 잔치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얘기를 해주셨을 때 스스로도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졌다. 그들이 나한테 거는 기대와 응원을 저버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리랑유랑단에 대해 소개해 달라.

중국의 동북공정 사업으로 인해 아리랑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다. 이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리랑 유랑단의 시초다. 전 세계를 다니며 한국문화를 알리는 유랑단은 우수한 사람을 뽑거나 특별한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문화를 사랑한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현재는 20대 이상을 모집하지만 10대 주니어 한국문화기획꾼도 기획 중이다.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들이 지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예체능전공자들도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시너지를 내서 서로 알고 있는 부분을 더 극대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이 활동이 됐으면 한다.

아리랑유랑단의 목표는?

초기의 생각은 우리문화를 지켜내겠다는 신토불이, 국수주의적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중국,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도 우리 문화와 아리랑을 사랑해주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의 노선이 많이 바뀌었다. 아리랑이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노래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로 세계인, 우리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문화로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취지다.

본인에게 아리랑이란?

조기유학생활을 했다. 외로움에 향수병을 앓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원정경기를 하러왔다. 경기장을 찾아 재외동포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을 때를 잊지 못한다. 이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터진 IMF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고 부모님께서 이혼하시면서 고시원방에 살게 됐다. 위로를 받기 위해 붉은악마에 가입했고 아리랑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었다. 나는 아리랑을 나의 기회로 받아들였으며 그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꺼내어 더할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 기획이 돼서 아리랑 유랑단과 함께 세계일주를 갈 수 있었고 그 과정 중 카페베네 대표님의 든든한 후원으로 좋은 친구들과 다녀올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엇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를 잡아준 것은?

꿈이다. 절벽 앞에 서면 그냥 떨어져서 죽을 생각만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절벽 너머로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그 원동력으로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는 남자승무원이라는 꿈을 가졌다. 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실업계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년제 관광경영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바로 아리랑 유랑단과 한국문화기획꾼이었다. 단순히 직업을 좇았던 것을 넘어 더욱 훨훨 날 수 있는 꿈의 진화를 이루어 냈다. 추상적일 수 있으나 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일푼 대학생이 어떻게 세계일주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가.

카페베네에서 대외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김선권 대표님을 만나 뵙고 아리랑유랑단의 계획을 말씀드렸다. 무모할 수도 있는 계획에 1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척해주셨다. 또한 인텔코리아에서 노트북,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용품 후원을 받는 등 도움의 손길이 많았다. 도전을 하니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셨다. 한글유랑단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마련했었다.

아리랑유랑단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 전통, 국악, 아리랑, 한복 등의 문화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던 평범한 관광전공자였다. ‘내가 어떻게 이들과 어울려 긴 여정을 떠날 수 있을까하는 것부터가 벽이었다. 예를 들어, 가야금 연주를 할 때는 마이크를 악기 울림통이 있는 밑바닥에 대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조차 모르는 허접한 상태였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힘들긴 했지만, 무엇이 더 필요한지 직접 부딪히고 싸우며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기획에 발전들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유랑단은 대금, 서예, 영상을 담당 하는 사람들 셋과 나, 넷으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다음엔 판소리, 장구 담당이 추가됐다. 그 다음엔 무용, 악기 담당 등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한 말인데, 결국 다 나와의 싸움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매순간의 눈물들. 한번은 우리공연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책상에 놓인 문방사우로 아리랑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을 써보라고 했다. 노래를 들을 때부터, 눈을 뜬 후 붓을 쥐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눈물, 단원들의 눈물도 모두 기억에 남는다. 한 방울 한 방울이 우리의 땀방울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노래가 갖고 있는 힘이 우리만의 한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 벅찼다.

한국문화기획꾼으로서의 올해 목표는?

우선 올해 안에 한국문화기획꾼의 심화과정을 수료하는 사람이 100명이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한국문화의 에이스들이 전 세계인에게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리의 100대 민족문화를 설정해놨는데, 이를 모두 아우르는 기획을 만들고 싶다. 아리랑 유랑단과 함께 북한도 가보고 싶고, 남북한 청년들이 한국문화를 아우르는 한국문화페스티벌, 한국문화올림픽 등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최종적으로는 아리랑스쿨을 한국문화의 태릉선수촌으로 키우고 싶으며 한국문화기획꾼이 한국문화의 국가대표들이 되길 바란다.

꿈을 좇길 두려워하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은 있다. 신은 버틸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뭔가에 도전한다면 버틸 수 있는 힘은 반드시 온다. 자신의 꿈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젊을 때야말로 머뭇거리지 말고 고민을 굵고 짧게 해라.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대학생이라면 자신만의 판을 키워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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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wl73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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