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리브로! 6. 정지용, 『향수』
비바, 리브로! 6. 정지용, 『향수』
  • 김남필 홍보팀장
  • 승인 2015.04.14 19:40
  • 호수 1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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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과 피붙이에게 우리 글로 그릴 수 있는 최고의 연가

그대.
오랜만의 한가한 주말입니다. 절정으로 치닫는 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을 나와 흙길을 찾아갑니다. 차도를 몇 번 지나치니 이내 한적한 산길로 접어듭니다. 온통 신록입니다. 봄기운에 들뜬 나무와 풀들은 선불 맞은 노루마냥 수선스럽게 생명을 뱉어내고 있습니다. 산길을 돌아 캠퍼스에 들어섰습니다. 두런두런 꽃송이를 드러낸 벚꽃나무들은 자랑하듯 벙긋 웃고 있습니다.

그늘에 앉아 시집을 펼칩니다.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우로
밤이
걸어온다.”
<바다 3, 정지용>

그대를 향한 내 그리움도 이렇습니다. 그대 향한 내 그리움으로 부르면, 그대도 이렇게 걸어 올 런지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처럼 내 그리움도 그대에겐 한갓 봄철 푸념으로 내쳐질까 두렵습니다. 그대는 내가 정지용 시인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나요?
제가 시인 정지용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이런 가없는 삶의 고단함을 절망이나 분노로 풀어내지 않고, 이를 귀하고 어여삐 여겨주는 데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말, 우리 글로 시를 쓰는 일을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시어를 한글 언어로 조련하려는 노력이 역력합니다. 하물며 그 작업이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식이 가물던 시절임에야.

“당신께서 오신다니 
당신은 언제나 오시려십니까.
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을 때
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
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
<풍랑몽 Ⅰ, 정지용>

그 간절한 그리움이 연인에 대한 목마름은 아니었을 겁니다. 겨레의 주인됨을 열망하는 시인의 열정이 한글에 실려 오붓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대, 사랑하는 그대.
지금 그대가 곁에 있다면, 그대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이 시를 읽어주고 싶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략)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략)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 정지용>

먼 훗날, 그대가 내 곁에 머물러준다면 우리는 저 곳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대가 있어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대 아니면 안되는 곳입니다. 파란 하늘이 있고, 아침 산책을 하고 나면 발끝에 이슬이 툭툭 채이고, 저녁이 깊어지면 별을 보다 잠드는 그 곳을 만들 것입니다. 부디 그 때까지 정지용 시인의 마음으로 나를 보아주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대를 그리워하겠습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하니
눈감을 수 밖에.” 
<호수 Ⅰ.정지용>
 

김남필 홍보팀장
김남필 홍보팀장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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