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을 틔우고자 움직이는 날갯짓
‘못다 핀 꽃’을 틔우고자 움직이는 날갯짓
  • 김보미 기자·전경환 수습기자
  • 승인 2015.04.14 23:10
  • 호수 1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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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할머니의 명예와 인권을 되찾는 그날까지
▲ 평화나비 콘서트를 연합 추진한 서울·경기지역 11개 대학의 학생들

지난 4일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2015 평화나비 콘서트’. 올해로 3번째를 맞이하는 평화나비 콘서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문화행사다. 흐드러진 벚꽃과 함께 어우러진 나비들의 노란 물결을 쫓아가봤다. <필자 주>

 

#1 신촌역을 물들인 노란 물결

신촌역 4번 출구로 나오니 어느새 만발한 벚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봄기운을 탄 듯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도 활짝 폈다. 행사 시작보다 이른 시간, 길바닥에 길게 늘어진 흰 전지에 오밀조밀 붙어 노란 물감을 칠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신진작가 전시회의 수익금을 마련하는 취지라고 하니, 기자도 물감 칠에 동참해 ‘단대신문’이라 적어본다.
건너편에 있는 행사 무대에서 음향과 조명을 수시로 체크하고, 리허설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무대 반대편에 마련된 11개의 흰 부스에서도 각 담당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단체로 맞춰 입은 노란색 티셔츠 탓일까. 티켓팅부터 무대, 부스운영, 본부지킴이, 촬영 등 제각기 역할이 나눠져 있는 서포터즈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발랄한 나비 같다. 오후 2시 40분의 신촌은 그렇게 젊은 노란 빛깔로 물들어 있다.


#2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가지각색의 참여마당

오후 3시가 되자 참여마당의 행사부스가 활동을 게시한다. 콘서트티켓 비용을 포함한 모든 행사 수익금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부된다고 한다. 티켓을 구입할 경우 구매자의 명의로 전달된다고 하니 티켓 두 장을 먼저 사고 나열된 부스들을 훑어본다. 일본대사관과 UN에 전달한다는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위한 세계인 1억 서명’에도 동참해본다. 큰맘 먹고 서명을 하려고 보니, 앞서 수많은 사람들의 서명이 보인다. 평소 서명운동을 꺼려했던 게 새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찬찬히 부스들을 둘러보니 유독 꽃과 나비와 관련된 행사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고등학생이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주제로 나비배지를 판매하는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이 단연 눈에 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역사동아리 회장 이예린(19) 씨는 “고등학생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께 힘이 돼드리고 싶었다”며 “근처 고등학교에서도 소녀상 건립 수익금을 모으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답한다. 삐뚤빼뚤한 작은 리본도 그 고운 마음을 닮아 예쁘게만 보인다.

부스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복놀이단과 D'tist 프로젝트의 ‘꽃반지 만들기 행사부스’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차례를 기다려 한복을 입은 여성 서포터즈의 지도에 따라 꽃반지를 만들어본다. 서포터즈로 행사에 참여한 직장인 이유주 씨는 “‘못다 핀 꽃’이라 표현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하고자 ‘한복을 입고 꽃반지 만들기’ 행사를 준비했다”고 전한다. 반지가 완성되자 비로소 콘서트에 참여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 같다.

#3 굵은 빗방울과 같은 힘찬 시작의 알림

어느덧 거리공연이 시작한다. 대학생 및 싱어송라이터들의 자발적인 재능 기부로 이뤄진 거리공연은 힙합, 댄스, 아카펠라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꾸려졌다.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맑았던 하늘이 어둑해진다. 안경을 쓴 사회자가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서 올해에는 콘서트가 열리지 않길 바랐지만 어김없이 3회 콘서트를 맞이했다”며 “내년에는 해결 축하 콘서트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멘트로 오프닝을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무대 앞에 모인 사람들이 “이 땅에 평화를,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란 슬로건의 구호를 3창 제창한 후 “2015 평화나비 콘서트 파이팅!”을 외치며 힘찬 시작을 알린다.


#4 나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첫 무대인 치어리딩과 국악 연주가 끝나자 장내가 잠시 숙연해진다. 이윽고 무대 끝자락에서 김복동, 길원동 할머니의 자유발언이 진행된다.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들이 마이크를 움켜쥐고 낸 목소리에 모두 숨죽여 집중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시대를 잘못 태어나 일본도 아닌 전쟁터로 끌려가 군인들의 노예가 돼 해방 후에야 돌아왔으나 아직까지 우리는 해방이 안 됐다”며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서 다시는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전쟁 없는 평화의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가슴이 시큰하다. 길원동 할머니 또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못 다하고 학생 여러분에게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며 “열심히 싸워서 대한민국이 최고가 되게 해 달라”고 당부한다. 두 할머니 모두 학생들이 평화나비로서 훨훨 날아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써주길 소망하는 것을 끝으로 힘찬 박수소리와 함께 무대를 내려간다.
할머니들이 퇴장하자 비극적인 역사를 대변하듯 더욱 굵어진 빗방울과 찬바람이 거세진다. 하나둘씩 노란 우비와 가지각색의 우산, 포스터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기 시작한다. 자유발언이 지나고 역사를 회상하는 짧은 창작뮤지컬과 학생밴드의 무대가 뒤따른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자작곡으로 해방 후 70년째 계속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잊지 않길 당부한다.


#5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다

무대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흰머리 할머니 분장을 한 배우 한 명이 무대 중앙에 앉아 독백을 시작한다. 곧 그 시절 위안부 소녀가 된 듯 생생한 묘사가 이어진다. 젊은 배우의 연기력이 장내를 장악해 어느새 모든 참가자가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할머니가 18살 적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때부터 해방 후 집에 돌아왔을 때까지를 회상한 내용이다. 그 표현이 너무 적나라해 사람들은 덩달아 고개를 숙이거나 한숨을 쉬기도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히 와 닿는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알아야 하고 바로잡아야 함을 되새기게 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6 평화로 하나 되는 젊음

적막을 깨는 택견 퍼포먼스 팀의 힘찬 등장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후에 이어진 평화나비 서포터즈 학생들과 택견 퍼포먼스 팀의 율동과 치어리딩, 서포터즈 대표 학생들의 ‘대학생 평화선언’과 선서를 끝으로 콘서트는 어느덧 마무리된 듯 보인다.
그러나 축제는 아직 끝이 아니다. 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걸음을 한 △브로콜리 너마저 △스컬&하하 △TA-COPY(락 밴드)의 무대가 펼쳐졌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 씨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빠른 해결보다는,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기고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싸움”이라며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공연을 진행한다. 다음 공연인 스컬&하하의 뜨거운 함성이 뒤따른다. 무대에서 거침없이 끼와 에너지를 발산하고, 노란 물결들도 이에 부응하여 전원 기립해 무대 앞쪽으로 돌진한다. 아픈 역사를 되짚고 평화의식을 되새긴 후에 하나 돼 뛰노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콘서트의 끝 무렵, 곳곳에서 각 대학의 이름이 적힌 깃발들을 선두로 기차놀이가 시작된다. 평화나비란 이름 아래 모두 하나가 된 것 같다. 저 멀리 ‘단국대학교 평화나비’라 적힌 깃발이 보여 기차놀이의 물결을 타고 뒤따라본다. 단대신문에서 나왔다고 하니 매우 반겨준다. 우리 대학 평화나비 회장 박태형(기계·2) 씨는 “기업의 후원 없이 팔찌 판매수익금 등을 모아 콘서트를 열었고, 입학하자마자 자발적으로 참여한 새내기들이 많아 뜻 깊다”며 “정동아리가 돼서 학내에서 많은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직 작지만 곧 창대해질 우리 대학 평화나비 동아리의 발전이 기대된다.
 

#7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행사의 예상 종료시간인 8시에서 두 시간이나 훌쩍 지났지만, 밤거리의 노란 물결들은 아직도 흥에 취해 있다. 뜻 깊은 일을 한 후 즐기는 축제, 참 건전한 유흥이라는 생각이 든다.
콘서트 사회자의 오프닝 멘트처럼 내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축하하는 콘서트가 열리길 바라며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다. 매주 열리는 ‘수요 집회’ 참여로 시작하는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일으킬 거대한 나비효과를 기대해본다.

 

        위안부 문제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받고자 하는 움직임
 
  지난 4일 신촌 연세로에서 <2015 평화나비 콘서트>가 열렸다. 평화나비 콘서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경기 지역 11개 대학의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가 연합해 추진한 행사로, 2013년 서울 시청 광장에서 시작해 올해로 3회를 맞이했다. 티켓 판매 및 행사 수익금의 전액은 ‘나비기금’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활동에 기부된다.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53명으로, 통계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매년 8명씩 생존자가 줄고 있다. 이에 평화나비 네트워크 및 시민단체는 하루빨리 일본정부로부터 위안부 범죄에 대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정오에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지난 25일에는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의 24개 대학이 순회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 김샘(숙명여대·24) 씨는 이전보다 많은 참여율을 이끌었던 이번 콘서트에 대해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일본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한국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파열음을 낼 것이라 믿는다”며 “‘우리’의 문제인 만큼 함께해주길 바라고, 단국대학교의 단국나비도 항상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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