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미래의 성장통 4. 불신을 넘어선 신뢰구도의 구축과 앞으로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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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쟁해결연구센터
  • 승인 2015.04.15 00:17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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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방폐장 건설과 고준위 방폐장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유치 실패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지역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항상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주민들의 뜻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의사소통의 부재 속에서 밀어붙이기 식의 태도로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고 지역지원책에 있어서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2003년 부안사태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은 정부는 이러한 ‘약속’들을 특별법이란 형태로 구체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200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새로 건설되는 방폐장이 필터, 수지, 장갑, 방호복 등의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저장하는 것을 명시했다. 그리고 지자체가 직접 운용하는 3,000억 원의 특별지원금을 제공하는 한편 이와는 별개로 방폐장 설치 후 운영수입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를 유치지역에 이전하는 등 지역지원 방안을 명문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부지선정에 있어서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해 지자체의 유치신청을 거친 후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선정을 확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와 같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배제되어 위험성이 크게 줄어든 동시에 지역지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됨에 따라 군산시, 포항시가 방폐장 유치에 대한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는 등 적지 않은 지자체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5년 6월 중 부지선정 절차와 일정을 공고하고 같은 해 11월 안으로 방폐장 부지선정을 최종 확정한다는 큰 틀을 정하고 최종선정은 유치신청 지역 중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1/3을 넘고 찬성률이 과반수를 넘는 지역 중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하는 유치방식을 확정지었다. 이어 군산, 경주, 영덕, 포항 등의 지방의회가 유치동의안을 차례차례 가결함에 따라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지역은 위의 네 곳으로 압축되었다. 주민투표는 11월 2일 무사히 치러졌고 그 결과 투표율 70.8%, 찬성률 89.5%를 기록한 경주가 다른 지역들을 제치고 방폐장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자체간의 경쟁을 통한 유치선정은 새로운 부작용을 드러냈다.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관권 개입 논란이 연이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치활동에 나선 지자체가 지역별 찬성률에 따라 해당지역 주민과 담당 공무원에게 차등보상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논란 끝에 중지가 결정됐고 부재자 신고과정에서 지자체가 개입하였다는 정황이 제시돼 선관위가 경고에 나서는 등 관권개입을 둘러싼 문제가 잇달았다. 그리고 지역단체장들이 삭발을 통해 유치결의를 다지는 등 선거전이 과열되는 가운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사례까지 등장했고 지역 내의 찬반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이 존재하였음에도 주민투표를 통한 방폐장 유치 확정은 정부의 갈등관리 체제가 이전보다는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최적입지 후보지를 선정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여러 후보지 중 한 곳을 선택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정부와 주민이라는 기존의 대립구도를 희석시켜 신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보상을 제공하는데 있어서도 유치지역 선정에 앞서 지원책을 특별법을 통해 보증함에 따라 주민들의 신뢰도를 높였다. 또한 주민투표를 통해 최종적인 결정권을 주민들에게 위임함으로써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추는 등 정부의 갈등관리가 이전의 사례들과 비교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용완료한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현재 각 원전에서 임시보관하고 있지만 2028년에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새로운 방폐장 건설이 시급하다. 정부가 설립한 민간자문 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13년 출범 이후 30차례 이상 회의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방안도출은 힘든 상황이다. 특히 위험성이 큰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는 더 큰 진통이 예상되는 만큼 과거의 문제점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주민들의 신뢰와 지지속에 고준위 방폐장이 건설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주민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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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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