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 : 겉모습보다 꽉 찬 내면으로 기생충학을 개척하다
서민 교수 : 겉모습보다 꽉 찬 내면으로 기생충학을 개척하다
  • 여한솔 기자
  • 승인 2015.04.15 18:21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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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가지않는 길을 개척하는데 보람느껴…"

조용함 뒤에 숨겨진 입담으로 방송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서민 교수. 우리 대학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의학연구와 동시에 사회학과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의학서적 외에도 세상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우리 대학 의과대 연구실에서 들어봤다.  <필자 주>

▲ 방송 출연 후 찾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

우리 대학의 학생들을 위한 강의 외에도 외부강의를 많이 다니고 있다.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학문 연구와 가르침을 하는 본 자리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다. 하루빨리 내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겠다. 그래도 연구를 위해 올해만 4월에 접어들 때까지 5편의 논문을 썼다. 이걸로 내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긴 참 부끄럽지만, 현재 다양한 일을 접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대학시절에 어떤 대학생이었나.
적극적이지 않은 대학생이었다. 의대를 다니던 대학시절, 정부를 향한 데모 거리로 나가본 적도 없다. 한마디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군사정권이 부당한 것은 인지했지만 그런 세상 문제에 목소리 내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의학 공부를 대단히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목표의식도 없던 그저 주어진 일만 하던 수동적 인간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하게 ‘나와 딱 맞는’ 학문인 기생충학을 만나게 됐다. 그 이후로 대학에 애착을 가지고 살게 된 것 같다. 의료 활동 외에도 의학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어떻게 보면 대학생활 끝 무렵에 학문의 가치를 찾았던 것 같다.

▲ 기생충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통해 일상에 변화를 만난 것인가.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학공부가 목적이어서 공부했다기보다는 하게 됐으니 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의학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의대 본과 4학년 때 기생충학을 진로로 정하면서 시작됐다. 나는 환자를 마주하는 일이 너무 두려웠다. 의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우스울 것 같지만 그 당시는 피, 터진 내장, 살점 등을 접하는 것이 굉장한 고역이었다. 물론 해야 했다면 수동적 인간처럼 해내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환자를 대하지 않아도 되는 의학 진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 전공에 딱 맞는 이상적인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생소한 학문이라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거기서부터 내 삶은 조금 재미있어진 것 같다.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 본격적으로 기생충 연구를 하면서 어떤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가.
기생충학 자체가 아직 연구할 것이 많은 미지의 학문이다. 기생충학을 다루는 전국의 40개 대학에서 교수가 단 50명 밖에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현재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든 것이 기생충학의 첫 발걸음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가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내가 개척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일이 연구하는 입장에서 가장 큰 재미이자 보람이다.

▲ 우리나라 현 기생충학 연구 환경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강연을 통해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을 만큼 기생충은 우리와 가까이 있으며 몸에 부대끼고 사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생충들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에 존재하는 기생충 보다 아프리카와 남미와 같이 오지에 있는 기생충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그런 기생충은 사람의 목숨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때문에 미국의 기생충 연구는 한 개인에서 나아가 인류와 생명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본받을 수 있다. 물론 주변의 모든 기생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가까운 것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주변보다 더 넓은 세상을 고루 살펴볼 줄 아는 연구자의 태도와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교수생활을 통해 만나는 대학생들은 어떤 것 같은가.
인내심이 부족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아마 책을 전혀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나 빠른 인터넷 등으로 학생들의 입맛이 굉장히 단순해졌다. 사회의 요구에 맞춰 취업에 치여 살며 바쁜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책을 읽지 않아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대화와 사고에 대한 인내심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태도가 몹시 결여된 이십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나도 비록 적극적이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분명 당시의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혼동하는 현대의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가진 젊음이 안타깝다.
▲ 인내심을 많이 강조하는 편인 것 같다.
그렇다. 인내심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우리의 인생은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투성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 공부하는 일, 일을 하는 일, 모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인내와 관련이 있다. 내가 연구하는 일도 인내심의 연장이다. 급한 마음으로 빠른 결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연구 결과를 기다리고, 결과를 비교하고, 작은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실험과 연구가 늘 약물이 퐁퐁 터지며 볼게 많은 명랑한 일이 아니다. 온통 기다리는 일이다. 이런 인내심은 결혼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인내심을 가지고 사는 본인의 결혼생활은 어떤가.
인내심을 가지니 싸움이 많이 줄어들더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볼 넉넉한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꺼운 서적을 읽어내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이 어떨지 이입해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 내가 바라던 부분을 아내가 이해해 줬는데, 아이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소위 이혼이라는 것이 몹시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인내를 가지고 살다보니 우주가 맺어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맞춰가게 된다.
▲ 아이가 없길 바란 이유는 무엇인가.
못생긴 외모로 어린 시절 너무도 큰 스트레스와 상처에 부딪혀야만 했다. 어릴 적 못생긴 외모로 항상 위축된 자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콤플렉스로 인해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서는 위축되는 자세를 보일 정도이다. 외모가 성장 과정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쳐 16살 무렵에 다짐했다. 결코 나를 닮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고. 대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내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강아지 4마리를 기르며 지내고 있다.

▲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사는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투정 아닌가.
좋은 대학과 만족스러운 직장, 행복한 결혼생활 등으로 누가 봐도 안락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모가 콤플렉스라고 말하기까지 언제나 사람들의 놀림과 눈초리에 많이 힘들었다. 성장과정에 겪은 상처들로 소극적 태도를 가지게 됐고, 의자에 앉았을 때 등을 꼿꼿이 펴지 않고 구부정하게 앉는 습관을 여전히 고치지 못한 것처럼, 아직도 어디서 주목 받을까봐 걱정할 만큼 두려웠던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자신이 나름대로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 독서와 삶의 태도에 대한 의견을 들으니 인문학에 대한 애정 역시 큰 것 같다.
인문학과 관련한 철학과 사고가 기본이 돼야 연구도 실험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외부 강의를 많이 다니고 있지만, 나는 강의보다는 책으로 승부하고 싶다. 연구를 통해서도 얻는 것이 많지만 늘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연구의 목적과 동일하다. 책을 통한 내적인 성숙이 멈추지 않았듯,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에 더욱 전념하고 싶다.

▲ 그러고 보니 책을 많이 썼다. 현재도 집필 계획이 있나.
4월과 5월에 출간예정이다. 4월에 발간될 책은 『집나간 책』인데, 기생충 이야기를 담았던 이전의 책과 달리 써보고 싶은 글들을 썼다. 5월에는 『기생충 공원』이란 제목의 책인데 기생충학과 관련해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집필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이름을 따왔다.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하는 것 보다는, 내 책이 꾸준히 읽히고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집필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잘 읽히면서도 유익한 책을 쓰고 싶다.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방송이나 외부강의를 다니는 교수보다는 우리 대학에서 학생들과 연구에 좀 더 책임지고 싶다. 가장 원하고 즐길 수 있는, 내 자리를 찾기 위해 더욱 힘쓰려 한다. 그리고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논문을 완성하고 싶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외부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지만, 이제는 보다 연구하고 쓰고 읽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자리니까

여한솔 기자
여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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