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인의 소거법(消去法)
평균인의 소거법(消去法)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15.05.13 02:02
  • 호수 13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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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떤 진로,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까? 막연하고 막막하다. 딱히 이런 걸 하며 살고 싶다는 게 분명치 않다. 자신의 전공 안에서도 어떤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며, 전공 자체가 자기에게 잘 맞는지도 의문이다. 졸업학기가 되어도 이렇듯 ‘자기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풍경은 대학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소위 ‘전인(全人)교육’을 기치로 내세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과정은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가르침으로써 지식정보의 불균형한 섭취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자 애써왔다. 하지만 ‘균형 잡힌 인간 육성’은 ‘평균인의 양산’이라는 반대급부를 감당해야 했다. 특별히 뒤지는 과목 없이 고루 평균은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두드러지게 재능을 보이는 과목도 없는 그런 학생들이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육계 전반에 걸쳐 특성화 교육이 권장되고 대학마다 창의적 인재의 발굴을 서두르고 있지만 학생 개개인의 자기계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별달리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평균인’으로 길러진 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결과’로 주어진 성적만으로는 자신의 취향과 진로를 결정하기 어렵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서야 이들은 ‘나는 무얼 해야 하나?’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주위의 생각 있는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충고하지만, 정작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마땅치 않다. 대중음악과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선뜻 그 길을 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학생들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시키면 남들만큼 보통은 하겠지만 특별히 잘 할 자신은 없다.

‘골고루’에 익숙해진 이들 평균인에게 ‘딱 이거!’라는 선택은 항상 어렵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사람에게 ‘무얼 먹을래?’라는 선택의 물음은 곤혹스럽다. 그래서 이제 물음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 본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대신에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가?’를 묻는 일이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마음이 덜 향하는 항목을 소거해 가는 길을 택한다. 소거법(elimination method)은 본래 수학 용어로서, 대수에서 미지수를 하나씩 소거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미지수의 값을 구한 후 이 값을 역으로 계속 대입하여 미지수를 구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 방법은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선택의 폭을 좁히는 데 원용할 수 있다.

소거법은 선택법의 반대이다. ‘선택’이 자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행위라면, ‘소거’는 자기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이것이다!’가 아니라 ‘이것은 아니다!’라는 결정이다. 결과적으로 소거법은 소극적인 자기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높지 않은 것을 지워감으로써 선호도가 높은 것을 남기는 방식이다. 여기에서는 ‘무엇을 더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하고 싶은가?’가 관건이다. ‘꼭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버리는 일이 긴요하다. 이런 식으로 선택의 범위를 좁혀감으로써 마지막에 남은 몇 가지를 자신의 경우에 대입하여 실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다. ‘고르기’가 어렵다면 ‘빼기’의 지혜를 택할 필요가 있다.

유헌식(철학) 교수
유헌식(철학) 교수

 yooriu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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